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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 읽어주는 남자]‘삼성-LG 세탁기 전쟁’…62만원 때문에 싸운 10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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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석 기자I 2015.12.12 09:24:28

檢, 재물손괴·업무방해·명예훼손 등 혐의로 지난 2월 기소
기소 10개월 만에 1심 무죄 판결…공판만 15차례
法"'삼성세탁기 연결부 강도 약하다' 허위사실 유포 아냐"
재판부 “삼성·LG, 상호 존중과 상생의 자세 가져달라” 주문

삼성 세탁기를 파손한 혐의로 기소된 조성진 LG전자 사장이 11일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2014년 9월 3일 오전 10시 30분(독일 현지시각). 조성진(59) LG전자 홈어플라이언스(HA) 사업본부장(사장)과 조한기(50) 세탁기 연구소장(상무), 전명우(55) 홍보담당 전무 등은 국제 가전박람회인 ‘IFA 2014’가 열리는 독일 베를린의 자툰 슈테글리츠 매장을 찾았습니다. 조 사장은 매장에 전시된 삼성전자의 드럼 세탁기의 도어를 열고 왼손으로 문 윗부분을 잡고 3회 눌렀습니다.

3시간 뒤, 이번엔 조 상무가 독일 베를린 소재 자툰 유로파 센터 매장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과 함께 삼성전자 세탁기 1대와 건조기 1대의 도어를 양손으로 누르며 여닫았습니다. 사건 직후 현지경찰이 매장에 출동했고 조 상무는 당시 변상의 의미로 세탁기 4대를 구매했습니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 했던 사건은 ‘LG전자 간부가 독일에서 삼성전자 세탁기를 파손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출고되면서 일파만파로 커집니다. 전 전무는 현지에서 “고의로 세탁기를 파손한 사실이 없으며 예상치 못하게 특정업체(삼성) 제품만 손상되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합니다.

한국에 돌아온 전 전무는 같은 달 14일 조 사장에게 “사건 삼성 세탁기 도어의 힌지(연결부)가 유독 취약했다는 내용을 적시해 배포하겠다”는 취지의 보고를 한 뒤 보도자료를 작성해 약 400명의 기자들에게 이메일로 발송했습니다. 이후 많은 매체들이 LG측 보도자료를 토대로 기사를 작성·배포했습니다.

삼성은 지난해 9월 11일 서울중앙지검에 조 사장 등 5명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검찰은 지난 2월 15일 조 사장은 재물손괴와 업무방해·명예훼손 혐의로, 조 상무는 공동재물손괴 혐의로 기소합니다. 또 전 홍보전무에게는 업무방해와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합니다.

재물손괴는 세탁기 도어를 파손한 것에 대한 혐의입니다. 외형이 멀쩡해도 사건 세탁기 도어가 정상제품과 달리 잘 여닫히지 않게 됐다면 재물손괴 혐의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조 상무는 신원미상인 사람과 함께 눌렀기에 공동재물손괴가 적용됐습니다.

업무방해와 명예훼손 혐의는 모두 보도자료 배포와 관련돼 있습니다. ‘삼성 세탁기 도어가 유독 약하다’는 허위 사실을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해 삼성전자의 세탁기 판매 업무를 방해하고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입니다. 검찰은 파손된 세탁기의 피해액을 62만 7000원으로 파악했습니다.

삼성 세탁기 파손 혐의로 기소된 조성진(사진 가운데) LG전자 사장이 1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원을 빠져나오고 있다.
세탁기 파손 LG측 책임 입증 못해 무죄

약 10개월 간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재판장 윤승은)는 11일 조 사장과 LG임원 등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먼저 재판부는 검찰이 조 사장이 파손했다고 주장하는 세탁기의 경우, 도어가 한 번에 닫히지 않는 등 정상제품과 다르다는 점을 검증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또 도어도 아래로 다소 쳐져 있어 닫는 과정에서 걸리는 느낌이 나는 등 사실상 파손됐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사건 세탁기의 도어가 조 사장 때문에 파손됐다고 믿을 수 있는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세탁기 상태에 관해 제출된 동영상의 촬영일자가 사건 발생 후 7일이나 지난 2014년 9월 10일인 점도 고려됐습니다.

재판부는 “조 사장의 모습이 찍힌 CCTV영상만으로는 조 사장이 힘을 가한 정도가 도어를 내려앉힐 정도였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는다”며 “IFA 기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만졌을 것으로 예상되며 따라서 다른 사람 때문에 도어가 파손됐을 가능성을 쉽게 배척하기 어렵다”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또 조 사장이 사건 이후 1시간 정도 해당 매장에 머물렀던 점도 파손의 고의성이 없었음을 증명하는 증거가 된다고 판단했지요.

조 상무의 공동재물손괴 판단은 더 쉬웠습니다. 법원의 검증결과 사건 세탁기와 건조기 도어를 닫을 때 전혀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고장 났다던)사건 세탁기·건조기 도어 상태가 새 제품과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며 “사건 세탁기를 구매한 것도 파손을 인정해서라기보다는 출국금지 조치를 피하는 등 사건을 원만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 설득력이 있다”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법원은 조 사장과 전 홍보전무에게 적용된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합니다. 재판부는 “‘삼성 세탁기 연결부 강도가 약하다’는 정도의 내용은 단순한 의견표명에 해당해 허위사실 유포로 보기 어렵다”며 “또 삼성전자 테스트 내용만으로는 위 내용이 허위라는 점이 명백히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명예훼손 혐의는 이미 삼성전자가 고소취하 및 처벌불원서를 제출했기 때문에 심리하지 않았습니다. 명예훼손은 반의사불벌죄로 상대방에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하면 처벌할 수 없습니다.

재판부의 당부 “상호 존중과 상생의 자세 잊지 말았으면”

이날 재판부는 주문을 모두 낭독한 후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윤승은 부장판사는 “LG와 삼성 모두 선의의 경쟁을 하더라도 대한민국 대표 굴지기업인 만큼 상호존중과 상생의 자세 잊지 말았으면 한다”고 부탁했습니다. 피고인석에 선 조 사장과 임원들은 깊이 공감한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재판이 끝난 후 조 사장은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에 감사드린다”며 “재판장님 말한 대로 더욱 기술개발에 충실해서 좋은 제품, 세계 고객들에게 사랑받는 제품과 세탁기 만들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삼성에 하고 싶은 말은 없느냐는 질문에는 “없다”고 짧게 답한 후 법원을 빠져나갔습니다.

하지만 이날 판결은 1심에 대한 결과일 뿐입니다. 검찰이 항소하면 다시 지루한 싸움이 시작됩니다. 검찰은 판결문을 검토한 후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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