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의 대선 후보들은 모두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외친다. 그러나 이명박 후보가 규제완화 등 대기업 정책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데 반해 정동영, 문국현 후보는 중소기업 중심 경제로의 전환을 강조하는 쪽이다. 권영길 후보는 기업정책 자체 보다는 기업 고용환경 개선쪽에 관심이 더 많다.
◇ 후보간 차별화 뚜렷한 대기업 정책
이명박 후보에게 '기업하기 좋은 환경'은 곧 '규제완화'로 연결된다. 경제성장을 강조하는 그는 "우리 사회의 비효율적 요소를 걷어내고 각종 기업규제를 완화해 투자를 촉진시키면 고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이 후보는 ▲법인세율 인하 ▲공정거래법을 경쟁촉진법으로 전환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기업활동·금융 규제 최소화 ▲노사관계 법지배 확립 ▲경영권 보호장치 강화 ▲금산분리 완화 ▲수도권 규제 완화 등을 공약했다.
모두 수년간 충분한 논쟁이 이뤄져 온 주제들로, 이 후보의 공약은 재계 즉 대기업들이 줄기차게 요구해 온 내용을 대부분 수용하고 있다. 당연히 전경련 등 대기업 단체들은 환영하는 반면 시민단체와 노동계 등은 지극히 비판적이다.
이 후보가 '화끈하게' 대기업의 요구를 수용하고 있는데 반해 다른 후보들은 사안별로 차이가 있다.
출총제에 관해서는 이인제 후보도 폐지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반면 정동영 후보는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로의 전환을 주장하고 있고, 권영길 후보와 문국현 후보는 출총제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 후보의 환상형 순환출자 도입은 외견상 출총제 보다 완화된 규제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미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출총제가 완화된 현실에서 환상형 순환출자 도입은 목적한 규제효과를 높이는 강화책의 성격이 강하다. 이는 참여정부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도입을 추진하다 좌절을 겪었던 정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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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한상공회의소, 전경련, 경총 등 재계가 잇따라 내놓은 건의서에는 출총제 폐지, 법인세율 인하 등이 들어 있다. 이명박 후보의 공약이 이들의 요구사항에 정확히 부합하는 반면 정동영, 문국현 후보 등의 기업관련 공약은 긴장관계를 이루고 있다.
최한수 경제개혁연대 팀장은 "현재 출총제는 규제 도구로서의 실효성을 사실상 잃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후보들의 입장차이는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 팀장은 "그럼에도 이명박 후보는 친 기업을 넘어서 친 재벌적 시각을 계속 드러내고 있다"며 "재계 수장이 아닌 한 나라의 대통령이 가질 기업관으로서는 대단히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환상형 순환출자 도입이라는 정 후보의 공약에 대해서는 "공약 자체는 바람직한 내용이지만 신뢰성에 의심이 가는 것이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정 후보가 신당 대선후보로서의 행보를 시작하면서 재벌개혁의 고삐를 죄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출총제를 후퇴시킨 것이 현 정권이고 정 후보가 그 주역의 한 사람이었던 과거를 생각하면 공약을 그대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
최 팀장은 "정 후보의 과거 행동에 근거해 지금 공약을 바라보면 다분히 표를 의식한 공약이 아닌가 싶다" 고 덧붙였다.
◇ `금산분리 완화`에 찬반 극과 극
금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업 겸영 금지) 원칙에 대해서는 이명박 후보만이 완화를 주장한다. 이인제 후보는 당분간 현행 제도 유지 후 점차 폐지하자는 입장이고, 다른 후보들은 모두 현행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자고 주장한다. 이명박 후보와 정동영 후보가 가장 첨예하게 정책적 차별점을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 후보가 주장하는 금산분리 완화는 문제의 심각성이나 보완책 마련에 대한 고심 없이 재계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전 교수는 "이 후보측은 은행 소유와 관련해 내국자본이 외국자본에 비해 역차별을 받는다고 하지만, 외국인은 3대 금융업종을 영위하는 회사가 아니면 은행을 인수할 수 없게 돼 있어 오히려 내국인보다 인수자격이 제약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은행과 대주주간의 거래를 제한하고 벌칙을 강화하는 방안은 이미 은행법 제35조에 규정되어 있는만큼 추가적인 안전장치가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은행단체 산하 연구소인 한국금융연구원도 금산분리 완화에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이병윤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산업자본의 은행소유 규제 완화는 필요한가'라는 보고서에서 “은행은 시장에서 자원 배분과 기업구조조정의 주체로 산업자본이 소유할 경우 자원 배분이 왜곡될 수 있다”며 “산업자본은 위험을 안고 성장을 추구하는 특성이 있어 은행의 경영주체로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반면 대기업 계열 연구소인 현대경제연구원은 "자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유연한 정책을 추구하는 일본 등 선진국 사례를 고려해야 한다"며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소유가 금지된 미국에서조차 산업과 금융의 협력이 실질적으로 진행돼 온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완화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다.
◇ 구호만 요란한 중소기업 정책
선거 때마다 모든 후보들이 `살리겠다`고 했지만 아무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게 중소기업 분야다. 이번 대선후보들도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는 이 없다. 하지만 당위론만 요란할 뿐 구체적인 실천방안은 여전히 부실하다.
이명박 후보와 정동영 후보는 중소기업에 대한 상속, 증여세 완화 등 세금감면을 약속하고 있지만 이는 현 정부에서도 이미 검토되었던 내용이다.
이명박 후보의 중소기업 관련 공약은 ▲혁신형 중소기업 5만개 신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협약 체결 유도 ▲신성장산업 부문 육성 등으로 요약된다.
이에 대해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협약 체결 유도와 신성장 산업부문의 육성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 공약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에 의해 지난 10년 동안 추진되어 온 것"이라며 "크게 차별성이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를 가장 강조하는 주자는 문국현 후보다. 중소기업부를 신설하고, 각종 정부 재원을 중소기업 지원에 쏟을 것을 약속한다. 독자생존이 가능한 3분의 1의 중소기업은 수출 활로를 열어주고, 나머지는 대기업과 윈윈하는 생생발전 프로그램을 가동시킨다는 구상이다.
문 후보 공약 내용에 대한 비판은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구상은 좋지만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대안이 많지 않다는 지적.
정태인 민노당 FTA 저지 본부장은 "문 후보의 말대로 매년 중소기업 생산성이 20%씩 향상될 수 있다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15%대에 이를 것"이라며 "거시적 정합성이나 실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고 꼬집었다.
정 본부장은 "문 후보의 주장대로 4조 2교대 제도로 생산성이 높아지려면 50인 이상, 고가의 설비를 사용하는 장치산업에 24시간 근무가 필요한 기업일 때 제대로 효과를 발휘한다"며 "절대 다수의 중소기업은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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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정책을 강조하기로는 정동영 후보도 문 후보 못지 않다. 육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는 양자간에 큰 차이가 없지만 추진방식은 다소 다르다.
정 후보는 대기업이 단가를 후려치는 것이 구조적 문제의 근원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올 상반기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이 "대-중기업간 기존 거래관행이 경쟁력 있는 벤처기업의 성장을 막아 오히려 퇴출시키고 있다"며 "그 결과 대기업이 국외 아웃소싱을 할 수 밖에 없게 돼 수출이 사상 최대라도 과실은 일본기업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이같은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대기업의 영업 행태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에 대한 실천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항공우주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정도가 다른 후보와 차별화되는 구상이다.
어느 후보든 전반적으로 `구호`는 있으되 정책은 불분명한 것이 중소기업 공약이다. 중소기업 인력 확보 등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 갈수록 후보들간의 공약이 비슷해지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