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새로운 정책 실행에 따른 따스함을 코스닥 기업들이 별반 누리고 있는 것 같지 않아서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발표되고 실행되는 자본시장 관련 정책 대상은 코스피보다는 코스닥 기업들이 해당된다. 기술력은 있지만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기업들은 대체로 코스닥에서 시작한다. 중소·벤처기업의 자금조달을 지원하기 위해 개설된 시장도 코스닥이다. 지배구조가 취약하고, 무자본 인수합병(M&A), 주가조작 등으로 일반 투자자의 피해가 속출하는 곳 또한 코스닥이기 때문이다.
중견기업부 폐지 후 ‘미래첨단기업부’ 신설
코스닥은 코스피와 달라야 한다. 코스닥 기업들은 기업규모·재무요건·성장성 등을 기초로 벤처·중견·기술성장기업부에 각각 소속돼 있다. 다양한 요건을 충족할 시, 우량기업부로 승격되기도 한다. 그런데 벤처나 기술성장이 아닌 중견기업부 소속이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코스피와 별반 다르지 않은 지점이다. 그마저 우량기업 수도 줄어들고 있다.
이에 합목적성이 결여된 중견기업부를 폐지하고 ‘미래첨단기업부’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 국민성장펀드의 본격 투자 대상인 AI 등 첨단산업을 위한 시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수수료나 세금 등 현재 코스피와 동일한 수준의 거래비용을 더 낮춰야 한다. 농어촌특별세나 호가 스프레드를 고려하면, 체감 거래비용은 코스닥이 오히려 더 높기 때문이다.
한계기업 과감히 퇴출해야
기술특례제도의 보완도 필요하다. 2017년부터 본격화된 기술특례 상장사들의 관리종목 지정유예 기간이 도래하면서 다수 기업들의 상장 폐지가 예상된다. 지난 5년간 기술특례제도를 통해 상장된 기업들의 75%가 적자에 허덕이고 있고, 주가는 공모가 밑이다. 이른바 ‘좀비기업’이다.
이에 기술평가 기준을 산업별로 세분화하고 복수평가를 의무화하며 기술평가와 시장검증을 연계하는 등 기술평가체계를 고도화해야 한다. 기술개발 진행 상황이나 공시에 대한 모니터링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상장유지 조건을 엄격하게 해 한계기업은 과감하게 퇴출시켜야 한다. 시가총액 대비 코스닥 상장기업 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대신 창업자들을 위해 차등의결권제 등 경영권 방어 수단을 제공해 경영에 전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일본 벤치마킹해 코스닥 독립
빠른 정상화를 위해서는 코스닥을 독립시켜야 한다. 코스피로의 이전 상장을 성공 기업으로 인식하는 위계적인 시장 구조에서 코스닥은 코스피의 하위시장 역할에 그친다. NAVER(035420), 셀트리온(068270), 카카오(035720) 등 코스닥 대표선수들은 매출 급성장 후 바로 코스피로 이전했다.
이는 글로벌 시가총액 10대 기업 중 사우디의 ‘아람코’와 대만의 ‘TSMC’를 제외한 모든 기업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가 아닌 나스닥(Nasdaq) 상장사인 점과 비교된다. 엔비디아·애플·MS·구글 등 기술혁신 기업들은 모두 나스닥에 있다. 나스닥은 기술주 중심의 투자자와 분석가 생태계가 탄탄하게 구축돼 있다. 테크기업의 상징이라는 브랜드 가치가 있어 NYSE로 이전하지 않고 나스닥에 머무는 것이 오히려 신뢰와 혁신을 인증하는 셈이다.
이를 위해 한국거래소를 지주회사로 전환하고 △코스피와 코스닥을 병렬적인 자회사로 두는 방안 △성격이 유사한 코넥스와의 합병 △부실기업의 신속한 퇴출 △추가 자본회수 채널을 제공하기 위한 K-OTC(장외시장) 강화 등 폭넓은 검토가 필요하다. 우리보다 앞서 자본시장 개혁을 단행한 일본도 우리나라의 코스닥과 코넥스에 해당하는 ‘자스닥’(Jasdaq)과 ‘마더스’(Mothers)를 합쳐 ‘그로스(Growth) 마켓’으로 재편, 그로스 마켓의 전 단계인 비상장기업의 자본조달 환경을 정비했었다.
한국판 SEC 검토해야
코스닥 성장에 발목을 잡는 또 다른 요인은, 불공정거래에 따른 신뢰도 저하에 있다. 잊을 만하면 코스닥 상장기업의 주가조작·무자본 M&A·부실공시 사건이 터진다. 시가총액은 코스피의 10%대에 불과한 코스닥의 불공정거래 건수는 코스피의 거의 두 배에 달한다. 시가총액이 작아 일부 자금으로도 주가를 조작할 수 있는 취약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코스닥위원회가 존재하지만 유명무실하다. 당국이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을 출범시켜 불공정거래에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는 점은 바람직하나, 이상거래 인지부터 검사·심의·수사 등을 단일기관이 처리해야 효율적이다. 필자가 주창해 온 ‘한국판 SEC(증권거래위원회)’의 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영문공시 의무화 일정 앞당겨야
코스닥 시장의 투자자 구조도 개선돼야 한다. 코스닥 시장의 개인투자자 비중은 70%를 상회한다. 단타 위주의, 변동성이 큰 시장이 될 수밖에 없다. 기관이나 외국인투자 비중을 늘리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며 코스닥 기업정보의 양이나 신뢰성, 접근성을 확대해야 한다. 물론 코스닥 기업들은 정보 비대칭성이 높고 기술 중심으로 해석도 쉽지 않다. 이에 코스닥 기업들만을 위한 정보 플랫폼 구축을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코스피 기업 위주로 돼 있는 증권사 리포트에 코스닥 기업들에 대한 분석도 증대시켜야 한다. 이와 함께, 정보의 신뢰성 확보를 위해 공시 내용의 진위 여부를 엄격하게 관리해야 하며 외국인 투자자를 위해 자율사항인 영문공시에 대한 의무화 일정도 앞당겨야 한다. 기관투자자의 자금 유입을 위해서는 인덱스 개발도 필요하다. 코스닥 기업에 대한 개별 투자가 부담스러운 현실에서 ETF(상장지수펀드)를 통한 간접투자는 좋은 대안이 된다. 가령 코스닥 150이외에 ‘K-AI’, ‘K-첨단산업’, ‘K-혁신’ 등의 인덱스를 검토할만하다.
장기투자 독려 세재 보완책 마련
세제 지원은 단골메뉴다. 금융당국은 코스닥 시장 활성화가 필요할 때마다 개인들에게 코스닥 펀드 투자금에 대한 소득공제, 배당소득세 비과세 또는 분리과세를 지원했다. 기관 투자자에게는 양도차익 비과세나 법인세 과세이연 혜택을 지원했다. 하지만 이들 세제안은 단기·한시적 제도로, 세제혜택 종료 시 오히려 대규모 환매 사태를 초래하기도 했다. 따라서 보유기간에 따른 배당소득세율 차등화 등의 지속가능하고 장기투자를 독려하는 세제 보완책이 필요하다.
정교한 기술평가를 통한 투자기업 선정
무엇보다도 코스닥 시장 활성화의 핵심요소는 우량 기술·미래 성장 기업의 원활한 상장에 있다. 성장 잠재력이 있는 미래지향적 기업이 상장되면 시장은 알아서 진보한다. 이를 위해 벤처캐피탈(VC)과의 연계는 필수적이다. VC가 기술 및 미래성장 기업을 발굴해 투자한 후 해당 기업이 코스닥에 상장되면 투자금을 회수하고 회수 자금의 재투자 과정을 통해 모험자본의 선순환 구조를 정립시킬 수 있다. 벤처캐피탈 역할의 일부를 수행할 국민성장펀드에 대한 기대가 큰 이유이다.
이를 위해선 정교한 기술평가를 통해 투자기업을 선정해야 하며 △시리즈 A·B △시리즈 C·D △Pre-IPO 등 기업의 성장단계별 투자비율을 확정해 적재적소에 자금을 공급해야 한다. 즉 치밀한 모니터링을 통해 투자기업의 잠재력이 빛을 발할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
급격한 지수 상승은 버블(거품)을 생성한다. 닷컴열풍을 비롯해 바이오 헬스케어 붐, 코로나 이후 유동성 확대 등으로 급상승한 코스닥 지수는 이내 버블이 터지며 급전직하했었다.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승은 허망한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생산적 금융에 대한 대대적 지원으로 코스닥은 재도약할 좋은 기회를 맞았다. 기술과 미래전략 산업으로 정체성을 재확립해 코스피와 경쟁하는 코스닥 시장의 진짜 성장을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