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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그럴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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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기자I 2025.10.24 05:00:00

박용후 관점 디자이너
한 마리의 물고기만 봐도 앞, 뒤, 위, 아래 모습 달라
상황 다르게 볼 여지 남겨야
더 건강한 삶 누릴 수 있어

[박용후 관점 디자이너]‘그럴 수도 있겠다.’ 필자의 친구 카카오톡 프로필에 적힌 문구다. 그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정치권으로부터 여러 번 억울한 일을 당했지만 그때마다 이 짧은 문장으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최근에서야 억울함이 풀렸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의 프로필에 담긴 다른 문장은 ‘아주 평범한 보통의 하루이길’이었다. 그가 끝내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그 관점 덕분이다.

우리는 흔히 “편견을 갖지 말라”고 말한다. 하지만 단순히 편견을 버린다고 해서 세상을 바르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 한쪽 면만 보는 습관이다. 한쪽 면만 본다는 것은 곧 다른 면을 놓친다는 뜻이고 그만큼 판단에 빈틈이 생긴다. 그리고 그 빈틈은 결국 오류로 이어진다.

물고기를 그릴 때를 떠올려 보자. 대부분은 물고기의 옆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실제 물고기는 옆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앞모습, 뒷모습, 위에서 본 모습, 아래에서 본 모습이 모두 다르다. 그럼에도 하나의 모습만으로 물고기를 정의한다면 그것은 현실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 사람이나 상황을 판단할 때도 마찬가지다. 단편적인 시선으로 내린 결론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생각의 오류는 대개 잘못된 전제에서 비롯된다. 누군가를 단 한 번의 행동으로 단정하면 이후의 판단은 그 전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 하지만 사람의 행동은 맥락과 상황, 심지어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필요한 태도가 바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이 말은 단순한 양보나 무기력한 중립이 아니다. 오히려 내 시선이 전부가 아님을 인정하는 성찰의 태도이자 관점을 입체적으로 확장하려는 지적인 노력이다. 앞서 말한 친구는 언제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고 덕분에 마음이 넓고 판단이 유연하다는 평을 들었다. 다양한 가능성을 여는 습관은 사고의 폭을 넓히고 그만큼 오류의 가능성을 줄인다.

입체적인 사고란 단순히 여러 의견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관점을 연결해 상황을 다면적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다. 예를 들어 사회적 갈등을 볼 때 “누가 옳고 그른가”라는 이분법적 시선에서 멈추지 않고 그 갈등이 발생한 맥락과 당사자들의 이해관계, 구조적 조건까지 함께 살펴보는 것이다. 명쾌한 결론이 당장 나오지 않더라도 성급한 판단에서 오는 실수는 줄일 수 있다.

우리가 마주하는 문제 대부분에는 정답이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판단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정답이 없기에 더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오류를 최소화해야 한다. 단편적인 관점은 빠른 결론을 유도하지만 위험하고 입체적인 사고는 시간이 걸려도 더 건강한 판단으로 이어진다.

사고의 사각지대를 줄이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먼저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의식적으로 다른 시각을 떠올려 보는 훈련이다.

‘내가 저 사람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볼까’, ‘이 장면을 위에서 본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 단순한 질문들이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결국 우리는 ‘옳음’을 독점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가능한 한 입체적으로 바라보려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말은 판단을 유보하는 표현 같지만 사실은 더 깊이 이해하려는 지적 겸손의 언어다.

잘못된 전제로 출발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판단의 빈틈을 줄이기 위해 우리는 이 태도를 삶 속에 자주 불러와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옆모습에만 갇히지 않는다. 앞, 뒤, 위, 아래 그리고 그 너머까지 바라보는 시선을 얻게 된다. 그 시선이야말로 낭패를 줄이고 더 깊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든든한 기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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