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목멱칼럼]실용주의적 혜안 필요한 산업안전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
최은영 기자I 2025.07.01 05:00:00

임무송 대한산업안전협회장 기고
사업장 안전관리자 의무화, 부담 큰 중기에 지원책 필요
처벌 중심 중처법도 한계…안전투자 이끌 유인책 절실

[임무송 대한산업안전협회장]우리는 여전히 하루 두 명, 해마다 800명이 넘는 노동자를 일터에서 잃고 있다. ‘산재공화국’이라는 오명은 현재진행형이다. 처벌은 강화됐고 규제도 늘었지만 재해는 줄지 않는다. 최근 제빵 제조업, 발전 공기업, 철강 대기업 등에서 발생한 사고들은 모두 같은 유형의 재해가 반복된 사례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대응 방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준법감시위원회, 민관대책위원회, 책임자 처벌. 익숙한 대응이 반복되지만 구조적 원인진단과 대책 없이 껍데기만 바꾸는 데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규제와 처벌이 강화되면서 겉모습은 바뀌지만 뿌리 깊은 위험은 현장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같은 기업에서, 같은 사고가 반복된다.

그렇다면 산업재해는 주로 어디서, 왜 발생하는가.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절반 이상이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이들 현장에는 위험성 평가는 고사하고 안전관리자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위험을 외주화하는 대기업의 하청 협력업체 산재도 결국 영세성에 따른 안전 부재에 원인이 있다.

제도는 있으나 실행되지 않고 책임은 있으나 주체가 없는, 그것이 바로 오늘날 중소기업 산업안전의 현실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구조를 제도적으로 방치해 왔다는 점이다.

1997년 기업활동 규제 완화의 일환으로 50인 미만 사업장의 안전관리자 선임 의무가 폐지된 이후 이들 사업장의 산재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1997년 3만4261명(51.3%)이던 재해자는 2023년 9만4994명(69.4%)으로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제는 그 결정을 되돌아봐야 한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안전관리자 선임과 정기 안전교육 이수 의무를 복원하되 정부가 비용을 지원하는 실용적 방식이 요구된다.

위험의 외주화를 제어하려면 원·하청 통합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도 시급하다. 도급 계약 단계에서 안전보건 조치를 명문화하고 발주자에게도 도급인과 동일한 안전보건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 공동안전보건협의체 구성, 통합 작업허가제 운영, 재해율 통합 산정 등을 통해 실질적인 책임 이행을 유도해야 한다.

또한 안전관리자의 자격과 경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이력관리제도’를 도입해 산업안전 인력의 전문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안전 분야에서는 ‘사람’이 곧 시스템이다.

건설업 분야는 사망 재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감리, 시공, 발주자 간 책임이 분산되고 조정 권한은 부재하다. 현재 50억원 이상 공사에만 적용하는 안전보건조정자 제도를 50억 미만 공사로 확대하고 책임감리자의 겸직을 금지하는 등 제도적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 아울러 건설 분야의 구조적 카르텔과 부처 간 칸막이 행정을 철폐하고 건설안전관리기관을 일원화하는 통합안전관리체계를 통해 제도의 실효성을 검증해야 한다.

안전은 경영 전략의 핵심이다. 투자가 따르지 않는 안전은 공허하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대기업을 중심으로 안전 투자도 늘고 있지만 준법을 넘어 실질적 안전경영으로 나아가려면 안전설비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서류 점검이 아닌 실질 중심의 ‘안전외부감사제’ 도입을 병행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제는 결국 국가의 노동안전 거버넌스 재설계로 귀결된다. 지금처럼 산업안전과 건설안전이 부처별로 분절된 체계로는 통합적 대응이 어렵다. 산업안전보건법과 건설기술진흥법의 중복 규제를 통합하고 고용노동부 내에 ‘노동안전 전담 2차관’ 체제를 신설해 정책, 제도, 예산을 총괄하고 일관되게 집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안전을 국민의 권리로 선언해야 한다. ‘국민안전기본권’을 헌법에 명시하고 그에 걸맞은 조직, 재정, 교육, 감시 시스템을 갖추는 것, 그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안전은 국가가 보장해야 할 삶의 조건이자 사회적 약속이다. 안전 대책은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실천이자 선언이다. 지시적 규제와 처벌을 강화하면 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믿는 한, 일터의 비극은 계속될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표방하는 실용주의를 산업안전 정책에도 정교하게 반영해 우리의 일터가 더 안전해지길 기대한다.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지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