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뒤 관악구청에서 박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관악구청 직원은 사고 관련 질문은 전혀 없이 ‘회전문 문제는 앞으로 개선할 테니 민원글부터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절차가 복잡해 개선에 시간이 걸리는데 민원글이 계속 걸려 있으면 내부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박씨는 거절했지만 담당 공무원은 몇일동안 민원글을 내려달라고 하루에 2~3차례씩 전화를 해왔다.
박씨는 “전화벨만 울려도 깜짝 놀란다”며 “민원을 해결하면 될 일을 왜 민원인에게 전화해 글부터 내려달라고 하는 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민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 민원해결보다 민원글 삭제부터 요구하는 공무원들 때문에 행정기관에 민원을 냈다가 되레 고충을 겪는 민원인들이 적지 않다. 공무원들은 답글 게재 등 행정절차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민원글 삭제를 요구하고 있지만, 민원인들은 어물쩍 민원을 덮고 넘어가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
서울시 한해 민원 11.5만건 …1만건 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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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각 지자체에서는 민원해결 지연으로 인해 공무원들에게 주어지는 불이익은 없다는 입장이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지자체마다 민원이 하루 수 천건씩 제기된다”며 “민원이 제기됐다고, 민원 처리가 지연됐다고 해서 해당 공무원을 징계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선현장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의 얘기는 다르다. 민원글이 올라오면 게시판에 답글을 올려야 하는데 답변내용을 결재 받아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해 민원인들에게 게시글 삭제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지자체 공무원 A씨는“게시판에 민원글이 올라오면 조치를 취해야 하는 데 구두 답변만으로 민원해결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관련 내용을 설명한 뒤 민원인에게 취소의사를 묻고 글을 내려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박씨 사례와 관련 관악구청 관계자는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민원을 상사에게 보고하면 꾸중을 들을까 싶어 민원인에게삭제를 요구한 경우로 보인다”며 “해서는 안 되는 실수”라고 말했다.
장기미제 민원 불이익 우려에 삭제요구도
포항에 거주하는 김여진(가명·43)씨는 집앞 도로가 오래돼 패인 곳이 많아 차가 다니기 어렵다는 글을 구청 민원게시판에 올렸다. 다음날 ‘바로 개선하겠다’는 답변이 달렸지만 한달이 다 되도록 어떤 조치도 없었다. 참다못한 김씨가 다시 민원글을 올리자 구청 담당자로부터 ‘절차가 지연되서 죄송하다며 민원글을 삭제해 달라’고 했다. 김씨는 “계속 전화해 민원글을 내려달라는 데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민원해결보다 민원글 삭제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아 불쾌했다”고 말했다.
장기간 민원이 해결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민원글 삭제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지자체 공무원 C씨는 “장기간 미해결 상태로 민원이 게시판에 남아 있으면 어떤 형태로든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며 “해결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민원은 민원인에게 삭제를 먼저 요청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명수 전국통합공무원 노조 대변인은 “공무원은 상사보다도 민원인 때문에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다”며 “모든 민원은 법률적 근거를 찾아서 답변해야 한다. 근거규정을 찾아서 일일이 답변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답변을 근거로 민원인은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한 책임은 공무원 개인이 져야하기 때문에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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