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은영 기자] 올해 유통업계 최대 화두는 ‘면세점’이다. 세계 1위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을 비롯해 서울과 제주에 신규 허가되는 시내 면세점도 조만간 주인이 확정된다.
올해는 특히 중소·중견기업에도 참여 기회가 주어졌다.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은 개항 이래 처음이다. 경기 침체 속에서도 수익을 내는 알짜 사업이다 보니 업체마다 눈독을 들이는 건 당연한 일.
그런데 중소·중견기업의 입장은 다르다. 길은 열렸는데 실제 참여하기가 녹록지 않다. 이미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노른자위라던 화장품과 향수를 파는 11구역은 두 차례나 유찰됐다.
토종 화장품기업 참존은 앞선 입찰에서 최종 낙찰자로 선정됐지만, 임차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해 중도 탈락했다. 100억 원이 넘는 입찰보증금만 날렸다. 참존이 연 매출 700억 원대 규모 회사임을 고려하면 이번 일로 얼마나 큰 타격을 입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참존은 입찰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한 소송도 검토했다. 패소하면 소송 비용까지 날리게 돼 섣불리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입찰에선 화장품 제조업체 리젠이 처음으로 면세점 입찰에 도전했으나 이번에는 입찰보증금을 내지 못해 또다시 유찰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업계에선 예고됐던 일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면세점 사업은 초기 투자비용과 운영비용이 높은 사업으로 자금 여력이 충분치 않은 중소·중견기업이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 인천공항 면세점은 임차료가 비싸 대기업도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한다.
공항공사는 중소·중견기업의 면세점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입찰 최저 수용금액을 일반기업 사업권의 60% 수준으로 낮추고, 대기업과 달리 임차보증금을 보증증권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경쟁이 과열되면서 입찰 금액이 높아졌고, 선뜻 보증을 서겠다는 회사가 나타나지 않는다. 정부의 배려 정책은 무용지물이 됐다.
두 차례 유찰된 11구역은 다시 주인을 찾아 나섰다. 지난달 30일 인천공항공사는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다시 입찰을 진행한다고 공고했다. 조건은 1·2차 입찰 당시와 동일하게 진행된다.
오는 6월 신규사업자 선정 절차가 시작되는 시내면세점도 우려되긴 마찬가지다. 면세점 사업은 일반적인 유통 산업과 구조부터가 다르다. 면세업체가 직접 물품을 매입해 판매해야 한다. 상품을 직접 사서 판매를 하기 때문에 규모가 클수록 협상력이 좋아지고, 단가는 낮아져 수익을 내기에 유리하다.
여기에 대기업은 유통업, 호텔업 등을 병행하며 면세점 사업에 시너지를 내고 있다. 면세점은 철저하게 규모의 경제가 지배하는 시장이다. 최근 국내·외 면세점들이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 불리기에 열을 올리는 것은 바로 그래서다.
면세점 사업자 대부분은 국내 대규모 유통망을 갖춘 대기업 계열이다. 어렵게 사업권을 따낸다고 해도 거대 유통사들과 맞붙어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지가 또 다른 과제로 남는다.
업계 한 관계자는 “땅을 사서 건물을 짓고 실내장식을 하기까지 면세점은 초기투자에만 수천억 원의 비용이 드는 사업”이라면서 “여기에 경쟁력을 갖추려면 명품 유치가 필수적인데 중소·중견기업들은 운영 경험이 없고 자금력이 달려 협상 테이블에 앉기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사실상 면세점은 중소·중견기업에게는 꿈의 무대다. 국내 대기업의 독주를 막고 중소·중견기업을 살리려는 정부의 취지에는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이들을 가로막는 벽은 현실이다. 중소·중견기업이 넘기에는 쉽지 않는 길이다. 길은 열렸으나 갈 수 없다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길이기는 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