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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까만 캔버스에 그려진 빛나는 별..우주와 하나된 소백산

이승현 기자I 2014.03.30 12:11:19

해발 1390m 국내 최고령 천문관측대...직경 61cm 천체망원경 구비
태양계 행성·별자리 육안관측도 가능.."천문학은 노벨상 수상 주요 분야"

[단양(충북) =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지난 28일 해발 1390m의 국내 최고(崔古) 관측대인 ‘한국천문연구원 소백산천문대’를 가는 길은 쉽지는 않았다. 소백산국립공원 입구를 거쳐 해발 695m인 죽령옛고개까지는 버스가 순조롭게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죽령옛고개에서 소백산천문대까지는 힘이 좋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갈아타고 가파른 경사의 울퉁불퉁한 1차선 콘크리트 도로를 40분 넘게 조심스레 올라가야 했다. 그나마 3월의 말인데도 최근 따뜻한 날씨에 도로의 눈이 대부분 녹은 것은 다행이었다.

한국천문연구원 소백산천문대의 직경 61cm 천체망원경. 천문연 제공
소백산천문대는 지난 1978년 소백산 연화봉 능선에 설치된 국내 최초의 현대식 천문대이다. 당시 볼러&치븐스 사의 직경 61cm 천체망원경을 들여와 40년 가까이 쓰고 있다. 이 곳에는 지금 13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연구원들은 1주일씩 교대근무를 하며 ‘밤새도록 일하고(별 관측) 낮에는 자고 일하는(연구·분석)’ 생활을 한다.

그런데 어렵게 천문대에 도착하자마자 허탈할 만한 일이 발생했다. 천문대에서 오늘 밤에는 날씨가 흐려 별 관측이 어려울 것 같다고 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천문관측 가능일수는 비나 구름 등 기상상황 때문에 일년에 120~180일로 매우 적은 편이다. 일년에 최대 350일을 관측할 수 있어 세계에서 천문관측의 최상지로는 꼽히는 칠레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천문연은 이에 안정적인 관측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칠레나 호주, 미국 중서부 등 해외로 적극 나가고 있다. 성언창 소백산천문대장은 “소백산에 직경이 더 큰 망원경을 들여올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연구원들 역시 이날은 61cm 망원경 시설의 천장 돔을 열지 않은 채 흐린 날씨 때문에 당일 관측을 잠정 중단하고 있었다.

그렇게 오후 9시부터 내부 건물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중 다음날 오전 1시가 넘어서자 바깥 하늘에 하나둘씩 흰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남서쪽에서 목성이 보였으며 이어 남동쪽에서는 화성이 보였다. 곧이어 7개의 별들로 구성된 북두칠성과 함께 정북쪽에서 북극성이 보였다. 목동 자리와 처녀자리 등 익숙한 별자리들도 눈에 띄였다. 몇 시간 전 새까맣던 캔버스에는 어느새 빛나는 별들이 촘촘이 박혔다.

직경 15cm의 망원경 두 대를 바로 천문대 공터에 설치하고 관측에 들어갔다. 육안으로도 밝은 목성은 망원경을 통해 보자 붉은색과 녹색 등 빛의 밝기가 더욱 강했다. 목성의 고리 2개가 마치 실선처럼 보였으며 미세한 점으로 표현되는 목성의 4개 위성도 관측됐다. 화성의 경우 특유의 불그스레한 빛을 확연히 내고 있었다.

한국천문연구원 소백산천문대에서 촬영한 남쪽 하늘의 모습. 사진 윗부분의 가장 밝은 별은 큰개자리의 ‘시리우스’. 천문연 제공
박병곤 천문연 광학망원경사업센터장은 스마트폰애 내장된 ‘구글 별자리 어플리케이션’을 하늘에 비추며 관측되는 별자리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처녀자리의 경우 지구에서 5400만 광년만큼 떨어졌다. 1광년은 초속 30만km 속도인 빛이 1년간 가는 거리이다. 이 빛은 우리 눈에 들어오기 위해 5400만 년을 달려온 것이다.

인류가 첫발을 내딘 달의 거리는 지구에서 약 38만km이다. 빛으로 1.5초면 갈 수 있다.

밤 늦게까지 관측을 하고나서 오전 8시쯤되자 천문대는 짙은 안개와 강풍에 휩싸였다. 해발 1390m 고지인데다 강풍까지 몰아치자 기온까지 영하에 가깝게 뚝 떨어졌다. 소백산천문대에서의 별 관측은 그렇게 끝났다.

36살의 ‘백전노장’ 소백산천문대는 지금은 주로 천문학 교수 및 전공자를 위한 연구용으로 활용된다. 틈틈이 중·고교생을 위한 ‘별 보기’ 체험교육의 장으로도 활용된다.

그렇지만 현역에서 은퇴한 것은 아니다. 매년 과학논문인용색인(SCI)급 과학논문을 5~6편씩 배출한다. 지난 2009년 두 개의 태양을 가진 ‘쌍성 행성계’를 세계 최초로 발견한 곳도 이곳이었다.

한국엔 현재 천문학 과정이 학부 7곳, 대학원 9곳에 개설됐지만 박사학위까지 받는 전문가는 일 년에 10명을 넘기 힘들다고 한다. 박 센터장은 “노벨 물리학상의 상당 부분이 천체물리학 분야에서 나온다”며 천문학 분야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한국천문연구원 소백산천문대 전경. 왼쪽 돔건물이 천체망원경 시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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