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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한국어' 사이[정덕현의 끄덕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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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기자I 2025.08.21 05:00:00

일제강점기 선열들이 절박히 지켜온 ''우리 것''
이젠 전 세계인이 즐기는 ''K'' 시리즈로 승화
어학당서 한국어 배우는 젊은 외국인들에게도
배타성의 그늘 드리운 ''우리''의 벽 열어주기를

[정덕현 문화평론가] 한국어 어학당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을 상대로 특강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 영화나 드라마, 가요를 통해 한국 문화를 알려주는 강의다. 그곳에 가면 실로 한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는 현실을 실감하게 된다. 아시아권은 물론이고 북미, 남미, 유럽 등지에서 온 학생들이 너무나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고 K콘텐츠에 대한 이해가 깊다는 걸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국문과를 다닐 때만 해도 이런 시절이 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우리는 국문과를 ‘굶는 과’라고 농담 섞어 말할 정도였으니 한국어와 한글에 대한 이런 외국인의 관심이 어찌 놀랍지 않을까.

몇 년 전 태국에서 열린 CJ ENM의 한류문화 페스티벌인 K콘(CON) 행사에 참가했을 때 가장 놀랐던 건 팬들을 위해 마련한 부스 벽면을 가득 채운 포스트잇이었다. 자신들의 최애 아이돌 그룹을 위한 응원이 담긴 포스트잇에는 한글로 적힌 문구가 적지 않았다. ‘사랑한다’, ‘최고’ 같은 표현들이 초등학생이 쓴 필체처럼 삐뚤빼뚤하면서도 정성스럽게 쓰여 있었다. 관계자들에게 물어보니 태국에서만도 한글의 저변은 이미 넓어졌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이들도 급증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대학생을 대상으로 열린 ‘한국어 올림피아드’에 특강을 위해 참여했을 때도 비슷한 소회를 느꼈다. 그저 한국어를 말하는 정도의 수준이 아닐까 싶었는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참가자들은 한국어로 발표를 하는 정도를 넘어서 한국 문화나 역사에 대한 이야기까지 술술 풀어내는 수준이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 참가자의 ‘사도세자’에 대한 주제 발표였는데 그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둔 이유는 물론이고 이 사건을 계기로 정조가 어떤 인물로 성장했는가에 대한 이야기까지 들려줬다.

물론 이들이 한국어와 한국 문화 심지어 나아가 한국의 역사까지 관심 두게 된 계기는 K콘텐츠의 영향이 컸다. K팝과 K드라마의 팬이 되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한국어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차츰 그 문화와 역사까지 찾아서 배우게 된 것이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필자 같은 한국인은 입국 절차가 까다로웠음에도 모스크바 안 한식을 파는 음식점에 줄이 길게 늘어 서 있을 정도로 그곳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그것 역시 K콘텐츠의 영향이었다.

K콘텐츠의 영향력이 나날이 커지고 따라서 한글과 한국어에 대한 외국인의 관심도 커지고 있는 현재, 국문과 출신으로서 과연 우리는 한글과 한국어를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고 있는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확실히 내가 어렸을 때와 현재는 그 관점 자체가 확연히 달라졌다. 어려서 글을 쓸 때 ‘한국’이라고 쓰면 대뜸 선생님들은 지적하곤 했다. “넌 어느 나라 사람이니” 그러면서 ‘우리나라’라고 쓰라고 했다. 그것이 맞는 표현이라고. 그런 교육을 받으면서 자라서였을까. 매일같이 글을 쓰는 걸 업으로 하고 살아가는 내가 어느 순간부터 우리나라 대신 ‘한국’이라는 지칭을 더 많이 쓰고 있다는 걸 알고는 적잖이 놀란 적이 있다. 우리나라와 한국. 이 지칭 사이에는 얼마나 큰 관점의 차이가 있는 걸까.

우리나라라는 말은 민족주의, 국가주의 시대에 우리를 하나로 묶어내는 힘을 발휘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말’이라는 표현도 그렇다. 일제강점기를 떠올려 보면 외세에 의해 빼앗길지도 모르는 위협 속에서 ‘우리말’이라는 표현에 담긴 ‘지켜내야 한다’는 절박함은 절대적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인이 함께 살아가는 글로벌 시대다. ‘우리나라’, ‘우리말’ 같은 지칭은 여전히 괜찮은 걸까.

‘우리’로 한정 짓는 순간 그 말을 배우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은 그 바깥으로 소외된다. 한국은 이제 더 이상 ‘우리’만의 나라가 아니다. 외국인들이 여행하는 곳이고 또 함께 살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어도 마찬가지다. 한국어는 이제 우리만의 언어가 아니라 외국인들도 배우고 싶어 하는 언어가 됐다. 그러니 이제 우리나라, 우리 말 같은 지칭 대신 한국, 한국어로 다소 객관화해 부르는 것이 모두에게 열려 있는 나라와 언어의 의미가 되지 않을까. 나아가 국어, 국사 같은 표현도 마찬가지다. 한국어나 한국사가 이 시대에 더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까.

지난 6월 이 코너에서 ‘배제와 포용 사이 우리’라는 글을 썼을 때 같은 국문과 동기 중 어학당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친구는 내게 이런 얘기를 했다. 우리나라, 우리말, 우리 민족 같은 말 자체가 배타적인 의미를 갖고 있어서 자신은 그런 표현을 안 쓰고 있다는 것. 정신이 번쩍 드는 얘기였다. 그 글에서 나는 ‘우리의 범주’를 좀 더 폭넓게 봐야 하고 차별보다 연결의 의미로 바라봐야 한다고 했지만 정작 우리라는 지칭을 붙여 쓰는 말들이 갖는 배타적 의미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 친구가 우리나라, 우리말 같은 표현을 안 쓰게 된 건 보다 외국인들과의 접점이 일상이 된 그의 삶 때문이다. 외국인들과 일상적으로 만나 수업을 하고 대화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지칭을 붙인 표현들이 그걸 배우러 온 저들에게는 무례한 일이 된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한국어를 하는 외국인들을 늘리는 일은 향후 국가 경제나 국제 외교에서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알아서 배우는 국제공용어가 된 영어를 제외하고 독일이나 프랑스, 일본, 중국에서도 자국의 언어를 외국인들이 쓰게 하기 위해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우리도 그만한 예산을 투입하지는 못할망정 적어도 K콘텐츠로 급증하고 있는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들에게 배타적인 인상은 주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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