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정부는 ‘33도 이상 폭염 시 매 2시간 이내 20분 이상 휴식 의무화’를 재추진하기로 했지만, 휴식 의무화 제도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만 대상으로 배달라이더 같은 특수노동자는 폭염에도 무방비 상태로 일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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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고용노동부와 노동계 등에 따르면 지난 7일 구미시 한 아파트 공사장에서 발생한 베트남 출신 20대 하청노동자 사망사고는 온열질환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구미 낮 최고 기온은 35도를 기록했다. 고용부는 “건설현장 체감온도는 이보다 더 높을 수 있다. 노동자 체온은 40도였다”고 밝혔다. 고용부는 부검 이후 정확한 사인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도 온열질환을 의심하고 있다.
이번 사망사고를 정부가 사실상 방치한 결과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진다. 휴식 의무화 제도가 도입될 수 있었지만 규제개혁위원회에 막히면서다.
국회는 지난해 10월 사업주의 보건조치 의무를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제39조)을 여야 합의로 개정했고, 고용부는 올해 1월 체감온도 33도 이상인 작업장소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 매 2시간 이내에 20분 이상 휴식을 부여해야 한다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제566조)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러나 ‘폭염때 휴식 의무화’ 제도화는 규제개혁위원회에 가로막혔다. 규개위는 영세사업장에 과도한 부담을 준다며 지난 4월 25일 해당 조항의 철회를 권고했다. 고용부는 옥외작업장의 폭염 대책으로 휴식 의무화가 유일한 조치라며 재심사를 요청했으나, 규개위는 5월 23일 재차 철회를 권고했다. 휴식 의무화 제도는 6월 시행 예정이었으나 규개위에 막혀 시행되지 못했다.
고용부는 재심사를 추진하고 있으나 그 사이 온열질환 의심 사망사고가 발생하면서 정부의 책임론이 불거졌다. 민주노총은 성명에서 “폭염 속 노동자 희생은 노동부와 규개위의 무책임이 부른 참사”라고 규탄했다.
‘휴식 의무화’해도..목수 쉴 때 장비운전수 일해야
사상 최고 수준의 폭염으로 고용부는 온열질환 사고 증가를 경계하고 있다. 고용부에 따르면 최근 7년(2018~2024년)간 온열질환 산재는 폭염이 극심했던 2018년(65명)과 2024년(63명)이 가장 많았다. 2019~2023년엔 20~30명 수준이었다. 온열질환 산재 사망자는 2018년 12명에서 지난해 2명까지 줄었지만 올해 들어 3월 말까지 2명이 발생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해 온열질환자가 현재까지 1000명에 육박하며 지난해 대비 2배로 늘어 산재 가능성이 지난해보다 급증했다.
고용부는 휴식 의무화 제도가 법제화되면 온열질환자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조항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게만 적용되는 점은 한계다. 배달라이더 등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노동자들은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산재사고가 빈번한 건설 현장에서도 목수는 휴식이 가능하지만 굴삭기 등 장비 운전자 대부분은 폭염에도 쉴 수 없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 지위로 사업주와 계약을 맺고 있어서다. 휴식 의무화 제도 근간인 산업안전보건법 제39조 및 40조 적용 대상은 사업주와 근로자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근로기준법과 달리 일부 직종의 특수노동자도 법 적용 대상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휴식 의무화 조항은 근로자로 못 박으며 대상에서 원천 배제했다.
고위험 폭염 작업을 ‘외주화’하며 사고가 발생한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 6일 인천 계양구의 한 맨홀 오수관에서 측량작업을 하던 50대 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은 ‘폭염 외주화’의 전형적인 예로 꼽힌다. 인천환경공단은 용역업체에 작업을 맡겼으나 업체는 숨진 노동자가 일해온 업체에 재하청했다. 다단계 불법 하청 의혹이 제기되자 고용부는 고강도 수사를 예고했고, 전국의 유사 고위험 사업장을 대상으로 하도급 계약관계를 포함한 긴급 감독·점검에 착수했다.
최명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이데일리에 “폭염 때 밀폐 공간에선 산소 농도가 낮아져 유해가스에 더욱 취약해진다”며 “문제는 외주화 과정에서 폭염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그 공간에서 누가 일하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폭염으로 인한 사망사고도 외주화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했다.
정부는 범정부TF를 꾸리고 ‘노동안전 종합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TF 단장인 권창준 고용부 차관은 “산업재해 원인은 고용 구조, 일하는 방식 등 다양하고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원·하청 계약 관계 등 지배구조와 이와 결부된 고용 구조로부터 나타나는 문제에 대한 해법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