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가 35회 신용평가 전문가 설문(SRE:Survey of credit Ratings by Edaily) 평가 기간인 지난해 10월 1일부터 올해 9월 30일까지 신용평가사들의 회사채 신용등급과 등급 전망(Creditoutlook), 감시(Creditwatch) 조정 내용을 투자등급(AAA~BBB-)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 한신평과 한기평이 각 총 4건의 선제 조정을 단행했다. 한신평은 지난해에 이어 이슈 선점 역량을 보였다. NICE(나이스)신용평가는 3건으로 집계됐다. 후행 조정은 한신평, NICE신평 각 6건, 한기평 2건이다.
평가일 기준으로 7일(5영업일 초과)에서 3개월 내 먼저 조정한 경우 선행으로, 따라오는 경우는 후행으로 분류했다. 5영업일 차이는 신평사 내부적으로 행정 처리에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고 3개월 초과는 관점이 다른 것으로 판단해 선·후행에 포함하지 않았다.
이번 조사 기간 신평사들의 선제적 조정은 11건에 그쳤다. 지난 34회 당시 14건과 비교했을 때 소폭 감소했다. 등급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타사의 선제적 등급 조정을 따라가는 모습도 지난 회 17건에서 올해 14건으로 잦아들었다.
◇ 한신평·한기평…선행 조정 4건
한신평과 한기평은 모두 4건의 선제 조정을 단행했다. 특히 한신평은 4년 연속 이슈몰이에 나섰다.
한신평은 등급 하향 조정이 2건이나 있었다. 지난해 12월 14일 롯데하이마트의 등급을 ‘AA-(부정적)’에서 ‘A+(안정적)’로 조정했다. 오프라인 시장 경쟁이 심화한 데다 온라인으로 수요가 옮겨가며 이익창출력이 저하됐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6월 5일 SK피아이씨글로벌의 신용등급도 ‘A(부정적)’에서 ‘A-(안정적)’로 내렸다. 석유화학 업종 불황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매출이 큰 폭으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 외에 한신평은 지난 3월 18일 기아(AA+, 안정적→AA+, 긍정적)의 등급 전망을 상향하고, 4월 22일 엔씨소프트(AA, 안정적→AA, 부정적)의 전망을 하향했다.
한기평은 4건의 선제 조정이 모두 등급 조정에서 이뤄졌다. 신용등급 상향 2건, 하향 2건이다. 지난해 10월 13일 HD현대중공업의 등급을 ‘A-(긍정적)’에서 ‘A(안정적)’으로, 같은 해 12월 22일 두산에너빌리티의 등급을 ‘BBB(긍정적)’에서 ‘BBB+(안정적)’으로 한 노치 올렸다. 조선과 건설기계 업황이 점진적인 실적 개선세를 보이면서다. 반면 SGC에너지(A+, 부정적→A, 안정적)와 GS건설(A+, 하향 검토→A, 안정적)은 등급이 하향 조정됐다.
NICE신평은 3건의 선제 조정 중 2건이 신용등급 상향인 것으로 집계됐다. NICE신평은 GS EPS(AA-, 긍정적→AA, 안정적), 포천파워(A, 긍정적→A+, 안정적)의 등급을 선제적으로 올렸다. 동화기업(A-)은 등급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내렸다.
각 신평사가 중점적으로 다루는 발행기업의 신용등급 반영이 되지 않은 영향도 있다. 실제로 NICE신평은 현대차그룹 신용등급 상향 조정에서 앞섰다. 지난 4월 NICE신평은 현대차 신용등급을 ‘AA+(긍정적)’에서 ‘AAA(안정적)’로 상향했다. 지난 2020년 4월 ‘AA+’ 등급을 받은 이후 4년 만이다. 이후 9월에서야 한신평이 같은 단계로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해 이번 평가에 포함되지 않았다.
단순히 신용등급을 먼저 상향 조정했다고 해서 적시성이 우수한 것은 아니라는 설문 결과도 나왔다. NICE신평은 통계상 신용등급 선행보다 후행이 많았으나, 평가사별 선제적 의견제시가 적절히 이뤄졌는지를 묻는 질문(5점 척도)에서 3.60점으로 가장 높은 평점을 받았다. 한신평은 3.57점, 한기평은 3.55점을 받았다. 신용등급 선제 상향 또는 하향 조정이 꼭 적정한 평가라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SRE 자문위원은 “시장에서 인식할 때 가장 먼저 등급을 올리는 건 NICE신평”이라면서 “변경된 유효등급을 첫 번째로 만든 곳을 선행했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통계자료와 사람이 인식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 신용도 하향 속도 감소…업종별 양극화 심화
35회 SRE 조사 대상 기간에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신용등급 하향 추세가 이어졌다. 다만 하향 조정 속도가 감소하고, 상향 조정이 다소 증가한 모습이다. 신평사 3사의 평균 등급 상하향 배율(업다운레이쇼)도 지난해 9월 말 0.53배(단순평균)에서 지난 9월 말 0.97배로 소폭 상승했다. 상하향배율은 상향 조정 건수를 하향 조정 건수로 나눈 값으로 1배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은 신용등급이 올라간 회사보다 내려간 회사가 더 많았다는 뜻이다.
현재 등급 조정 속도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현 수준의 등급 조정 속도가 적당하다’는 응답은 전체 응답자 183명 중 141명으로 77.04%에 달했다. 응답자를 직군별로 살펴보면 비 크레딧 애널리스트(비 CA)가 94명으로 가장 많았다. 매니저(MG)는 64명, 크레딧 애널리스트(CA)는 47명을 기록했다. 이어 ‘하향 추세를 더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40명(21.85%)이 답했다. 실제로 설문 응답자는 “하향 조정이 감소한 것은 인정되나, 상향 조정이 증가한 부분은 빠른 감이 있다”고 밝혔다.
신용등급 하락 추세는 지난해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경기 위축으로 인해 부동산 PF 우발채무 부담이 커지면서 건설 및 제2금융권 관련 업종의 등급 강등이 이어지면서다. 고금리 여파에 유통 업종을 비롯해 업황 저하로 재무 부담이 커진 석유화학 업종도 신용등급 강등 대상이 됐다. 다만 자동차, 중공업, 민자발전, 건설기계 등 일부 업종의 경우 회복세를 보이며 등급 상향이 이뤄졌다.
신용등급 조정에 대한 전망을 묻는 질문에서는 ‘업종별 실적이 엇갈리면서 양극화가 심화할 것’이라는 응답이 187명 중 절반이 넘는 108명(59.02%)이 응답했다. 이어 ‘금리 인하에 따른 신용등급 영향은 제한적일 것’(44명·24.04%), ‘올해 충분히 하향 조정이 이뤄지지 않아 금리 인하에도 등급 하향 흐름이 이어질 것’(26명·14.21%), ‘고금리 종결로 등급 상향 흐름으로 돌아설 것’(4명·2.19%) 등의 순이다.
SRE자문위원은 “내년 회사채 시장과 관련해 금리가 내려가는 국면임을 감안하면 양극화 해소 측면도 있다”며 “최근 스프레드 확대 폭이 많이 둔화하고 있다. 내년에는 과거 평균 레벨 수준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35회 SRE(Survey of credit Rating by Edaily) 책자에 게재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