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한글날은 일제강점기던 1926년 조선어학회 등을 중심으로 겨레말을 지키고자 하는 민족적 자각에서부터 시작됐다. 해방 이후 국경일과 공휴일로 지정되며 한국은 전 세계 국가 중 유일하게 자국의 독창적인 문자 창제를 기리는 나라가 됐다. 그러나 1991년 노태우 정부 당시 10월에 집중된 연휴로 수출부진 등 경제계가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유에서 한글날은 국경일에서 기념일로 격하되고 공휴일에서도 제외됐다. 한민족의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인 훈민정음의 반포를 기념하는 날을 외세가 아닌 우리 스스로 홀대하며 달력에서 지운 것이다.
이후 2005년 국경일로 복귀됐지만 ‘빨간 날’이 아닌 탓에 온 국민이 가족과 더불어 한글날의 의미를 되새기며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기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지난 5월 문화체육관광부의 여론조사 결과 한글날을 알고 있다는 국민은 64%에 머물렀다. 그만큼 우리 국민의 문화적 정체성이 약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다소 비약을 하자면 부모의 생일도 모르면서 효도를 운운하는 자식이 셋 중에 한 명인 셈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국민의 83.6%가 한글날 공휴일 부활을 찬성하고 있다. 한글학회를 비롯한 한글단체와 학계 인사들로 구성된 한글날 공휴일 지정 범국민연합은 “한글날 공휴일 지정은 4조 9066억원의 경제유발효과를 발생시켜 내수경기 활성화를 이끌어내고 경제에 도움을 줄 것”이라며 한글날 폐지 당시의 논리를 반박하고 있다.
한글날 공휴일 지정을 위해서는 현재 두 가지 방안이 있다. 국회에서 법을 제정해 법정공휴일로 명시하는 것과 정부가 대통령으로 돼 있는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수정해 공휴일로 지정하는 것이다. 지난 18대 국회에서 한글날 공휴일 지정 법안이 발의됐다가 자동 폐기됐다. 19대에서도 재차 발의됐지만 대선 등 연말 정치일정을 고려하면 통과 가능성이 낮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에 따르면 지식경제부와 고용노동부 및 행정안전부 등 관련 부처는 한글날 공휴일 지정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다.
결국 한글날 공휴일 지정의 열쇠는 이명박 대통령이 쥐고 있다. 국무회의를 통해 대통령령으로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할 수 있어서다. 임기 말 대통령이 정치력을 발휘해 ‘문화적인 치적’을 남길 수 있는 드문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게다가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83.6%가 찬성하는 일이다. 올해는 불가능하지만 내년 10월9일 훈민정음 반포 567돌을 맞은 한글날에는 전임 대통령의 결단에 고마워하며 한글 창제의 의의와 휴일의 여유를 함께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