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로벤섬은 ''토끼와 전쟁 중''

조선일보 기자I 2010.02.02 09:48:00
[조선일보 제공] 남아프리카공화국 수도 케이프타운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로벤섬(Robben island)이 ‘토끼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서울 여의도의 3분의 1 크기인 5.07㎢ 좁은 면적에 서식하면서 생태계를 파괴하는 토끼떼를 적정 규모로 줄이기 위해 남아공 정부가 대대적인 토끼 없애기 작업에 나선 것.

케이프타운 앞바다에 위치해 배로 45분 거리에 있는 로벤섬은 넬슨 만델라 전(前) 대통령이 27년의 수감 생활 중 18년을 보낸 곳으로, 당시 감옥 건물은 박물관으로 개조돼 남아공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자리잡았다.


2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 보도에 따르면, 로벤섬의 토끼사냥꾼 크리스 윌케(Wilke)씨는 한 시간에 25마리꼴의 토끼를 사냥한다. 작년 10월 중순 이후 이렇게 잡은 토끼들은 5300마리. 하지만 아직 섬에는 8000마리 정도의 토끼들이 더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윌케씨는 “토끼를 죽이는게 재미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토끼사냥이 좋은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I can’t say this killing is fun, but I do feel good about it)”이라고 말했다.

토끼가 이 섬에 살기 시작한 것은 35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네덜란드 정복자들이 육류를 조달하기 위해 키우기 시작했다. 이후 토끼들은 암컷이 생후 3개월이 되면 임신이 가능하고 1년에 여섯 차례 8마리씩의 새끼들을 낳을 만큼 엄청난 번식률을 자랑해왔다.

수백년동안 로벤섬에서 사람들은 고기로 먹거나 스포츠 사냥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토끼의 번식을 제한했다. 이곳에 감옥이 있을 때는 야간에 경비원들이 총으로 토끼를 잡곤 했다. 그러나 감옥이 폐쇄되면서 사냥이 중단됐다. 토끼들에겐 ‘평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결국 토끼는 무섭게 불어났다.

우선 토끼들을 본토로 옮기는 방안이 강구됐지만 좋은 생각은 아니었다. 로벤섬처럼 본토에서 토끼가 퍼질 경우 재난이 될 것이 불보듯 뻔했다. 대안으로 덫을 놓아 잡아서 고통없이 죽이는 방법이 제시됐다. 그러나 토끼들을 덫으로 사냥하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졌다. 게다가 토끼들을 안락사시킬 때 겁 먹은 듯한 토끼들의 표정과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보느니 차라리 총으로 쏘는 게 낫다는 점이 지적됐다. 총으로 토끼를 잡는 방법이 몇몇 동물보호단체 인사들을 소름끼치게 만들었지만 반대의 강도는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동물잔학행위방지기구의 앨런 페린스(Perrins) 회장조차 동의할만큼 심각한 상황이다. 페린스 회장은 “아무도 로벤섬에서 동물들이 희생되는 것을 원치 않지만 토끼들이 세계문화예산으로 등재된 건물의 바닥까지 굴을 파고 있는데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로벤섬 측은 사냥한 토끼의 처리 방법에 대해 두 가지를 논의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모두 매립했으나 앞으로는 자선단체에 보내 빈곤층 가정에 고기로 공급하는 방법, 다른 하나는 남아공 야생동물 보호구역의 치타들을 위한 먹이로 활용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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