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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문정태 김일문 기자] 유럽발 재정위기 여파에 이어 일본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으로 국가채무 관리의 중요성이 세계적인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국가채무가 지난 10년간 연평균 10% 이상 빠르게 증가한 우리나라의 경우도 국가채무를 낮추고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은 희망적으로 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경제성장의 밝은 면만을 부각시키려고 한다는 의심을 받아온 정부는 국가부채 규모를 작아보이게 한다는 비판에도 직면하고 있다. 부랴부랴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는 있지만, 따뜻한 시선을 찾아보기는 힘든 게 현실이다.
◇눈덩이처럼 불어가는 국가부채
국가재정통계에 포함되는 한국의 국가부채는 해마다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01년 121조8000억원(GDP 대비 18.7%)이었던 국가부채는 2005년에 247조9000억원으로 두 배로 늘어났다. 이어 2010년에는 407조1000억원으로 늘어나 GDP 대비 36.9%를 기록했다.
공식적인 국가부채로 포함되지는 않지만 `사실상 국가부채`로 볼 수 있는 공공기관부채 또한 국가부채 못지 않다.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기관부채는 2004년 88조4380억원에서 2009년 213조2042억원, 2010년에는 347조6000억원으로 대폭 늘었다. 기존의 국가부채에 공공기관 부채까지 합하면 약 750조원으로, GDP의 70%까지 부채 규모가 커지게 된다. 특히, 120조원의 부채를 짊어지게 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비롯해 수자원공사의 8조원, 한국전력의 22조원은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대신 갚아줘야 하는 사실상 국가부채다.
그런데 공기업의 재무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2006년 97.6%였던 공기업의부채비율은 2007년 107.2%, 2008년 133.4%, 2009년 153.5%를 기록하는 등 해마다 두자릿수 이상 늘어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한국경제원에 따르면 오는 2012년까지 한국주택공사 51조원, 한국토지공사 42조원을 포함해 145조원의 부채가 추가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가부채 규모가 1000조원이 넘는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 보증부채, 4대 공적연금의 미래 지급액 등을 감안하면 국가 부채는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불어난다.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사실상의 국가 부채` 규모가 1637조4000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정통계 개편안 "이게 최선입니까"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는 민관 합동 작업반을 마련해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 1월 공청회를 통해 재정통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2년 넘게 공들여 내놓은 결과물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부정적이다.가장 큰 쟁점은 이번 개편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 채무 편입 대상의 분류 기준이다. 정부는 독립적인 의사결정과 자금운용이 가능한 곳을 공기업으로 분류하고 이 가운데 원가 보상률 50%를 기준으로 편입 대상을 다시 나눴다.
원가보상률이란 판매액을 생산원가로 나눈 수치로 원가보상률 50%는 물건을 내다 팔아도 이윤은 커녕 손에 쥐는 돈은 원가의 절반 정도라는 뜻이다. 하지만 공기업의 경우 이 기준대로라면 자생력을 갖춘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문제는 원가보상률 50% 기준을 적용하면 국가 재정건전성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LH공사 등 부실 공기업들의 부채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는 원가보상률 50%가 대다수 OECD 회원국들의 시장성 판단 기준이라 이를 준용했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공청회에 참석했던 김유찬 홍익대 교수는 "원가보상률 50%가 적정한 수준인지 따져보지도 않고, 단순히 국제적인 기준이기 때문에 따라간다는 정부의 설명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특히 정부가 제시한 공기업 자료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정부가 공기업 대부분의 원가 보상률이 100%를 웃돌고 있다고 밝혔지만 정확한 수치인지 모르겠다"며 "원가보상률에 대한 자료를 좀더 투명하게 제공해서 공감을 얻도록 하는게 우선이다"고 강조했다.
◇반쪽 개편안, 이대로 강행?
재정 통계 개편안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거세지만 수정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무엇보다 이번 개편안에 대한 정부의 신념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원가보상률 문제가 불거지자 별도의 민간위원회를 구성해 보완에 나선다는 입장이지만 제도 자체를 처음부터 다시 뜯어고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번 개편안의 방점은 국가 부채 산정 기준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는데 있다"며 "실효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개편안의 방향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고 못박았다. 이 관계자는 또 반대 여론이 문제를 잘못 짚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기업 부채를 국가 채무에 편입시킬 지 여부 보다는 그 부채를 어떻게 관리해 나가는지가 더 중요하다"며 "공기업들은 별도의 계획에 따라 재무 건전성을 개선시켜 나갈 것이다"고 덧붙였다.
반면 재정통계 개편안을 정부 뜻대로 그대로 끌고 가더라도 공기업 부채를 인식할 만한 각성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계속되고 있다. 정도영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이번 개편안을 전체적으로 수정하기 어렵다면 보조지표 활성화 등을 통해 공기업 부채를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국가 채무 산정에서 빠진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의 충당액과 미적립금 현황을 주기적으로 공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