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학선기자] 일반적으로 어느 한 쪽이 인수합병 계약을 깨면 인수금액의 10%를 상대방에게 위약금으로 물어야 한다. 하지만 SK텔레콤(017670)의 하나로텔레콤(033630) 인수합병에는 이보다 더 많은 위약금 조항이 있었다고 한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인수금액의 최대 50%(5000억원)까지 위약금으로 청구할 수 있다"고 했다.
◇SKT "소송시 시간은 우리편"
AIG-뉴브리지 컨소시엄이 LG 제안을 거부했던 것도 위약금을 물고나면 SK텔레콤과 LG의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지분매각 대가를 더 받겠다고 여론의 따가운 비판을 감수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더 큰 문제는 역시 시간이었다. 전화 한통으로 펀드만기를 연장시킨 하나로텔레콤 대주주였지만, 마냥 시간을 길게 끌고 갈 수는 없었다. 외국자본에 대한 좋지 않은 여론과 새 정부 출범이라는 정치적 변수가 눈앞에 있었다.
SK텔레콤은 이를 십분 활용한다. 하나로텔레콤이 인수계약을 부인한 다음날(12월4일) SK텔레콤은 AIG-뉴브리지 컨소시엄에 '주식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겠다는 문서를 보냈다. 소송을 걸면 적어도 2년간 하나로텔레콤 지분을 매각할 수 없을 것이라는 고도의 노림수가 깔려있다.
결국 AIG-뉴브리지 컨소시엄은 두손을 들었다. SK텔레콤이 법적 대응방침을 밝힌 그날 오후 AIG-뉴브리지 컨소시엄은 "계약대로 진행하겠다"는 뜻을 SK텔레콤에 전달했다. 사실상 백기투항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하나로텔레콤은 공시를 번복했다며 증권선물거래소로부터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는 수난을 겪었지만 아무런 변명도 못했다. 패자는 말이 없듯 협상에 밀린 하나로텔레콤 대주주도 그랬다.
◇김신배 사장 급거 귀국..포기설까지
비교적 순탄할 것으로 예상되던 하나로텔레콤 인수과정에 막판 변수가 등장했다. 기업결합심사 권한을 지닌 공정거래위원회다.
당시 경쟁사들은 SK텔레콤의 하나로텔레콤 인수시 통신시장의 독과점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공정위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KT그룹의 경우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를 언론에 흘리는 등 SK텔레콤 견제를 위한 물밑작업에 열을 올렸다. SK텔레콤으로선 다된 밥에 코 빠뜨리는 결과가 나올지 몰랐다.
급기야 김신배 SK텔레콤 사장이 스페인 출장일정을 취소하고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귀국 후 김 사장은 CIC(사내독립기업) 사장들과 대책회의를 갖는 등 어느때보다 부산하게 움직였다. 당시 SK텔레콤 내부에선 하나로텔레콤 인수 포기 시나리오까지 거론됐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수포기는 계약파기에 따른 위약금 지불은 물론 주주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 사안이다. SK텔레콤은 선택지에서 이를 제외한다. 이후 SK텔레콤은 공정위 대신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정책심의위를 주된 공략 포인트로 삼았다. 공정위가 시정조치를 내려도 정통부가 바람막이가 될 수 있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실제 정통부는 공정위의 시정조치 내용을 인가심사에 반영하지 않는 등 사실상 SK텔레콤에 유리한 결과를 내놓았다. SK텔레콤의 전략이 성공한 것이다.
◇하나로 인수 1등 공신은
SK텔레콤은 그간 하나로텔레콤 인수를 기정사실로 하고 여러 작업을 진행해왔다. 하나로텔레콤 전 고위임원을 영입하는가 하면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인수 이후 영업전략 등을 세우고 있다. 태스크포스팀은 조신 전무가 이끈다.
하나로텔레콤 인수과정에 눈에 띄는 인물은 단연 하성민 CIC 사장이다. 하 사장은 하나로텔레콤 인수작업을 진두지휘했다. UBS로부터 자문을 받긴했지만, 대부분의 작업을 SK텔레콤 스스로 진행할 수 있었던 것도 하 사장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하 사장은 지난 2000년 신세기통신 합병과 2002년 KT와 SK텔레콤간 주식스왑 등을 이끌었던 재무분야의 전문가다. 지난해 말 조직개편에서 전무에서 CIC 사장으로 승진했다.
현재 SK텔레콤은 "하나로텔레콤 인수는 경쟁이 사라진 유선시장에 새로운 바람불러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한 만큼 KT그룹과의 격돌을 피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KT가 주목받는 이유
하지만 SK텔레콤이 유무선 시장의 절대강자로 올라설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사실 이번 인수는 KT그룹에도 큰 선물을 안겨줬다. 무선시장 1위와 유선시장 2위 업체의 결합을 허용해준 정부가 KT(030200)와 KTF(032390)간 합병에 제동을 걸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KT는 지난해 KTF에 대한 공정가치 평가를 진행했고, CFT(Cross Functional Team)라는 조직을 신설해 지배구조 개편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CFT 팀장은 권행민 KT 전 재무실장이 맡고 있다.
KT의 이 같은 대응을 염두에 둔 듯 김신배 SK텔레콤 사장은 최근 직원들에게 "위기의식을 가져달라"고 주문했다. 김 사장은 "초경쟁 환경 속에서 게임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선 기존과 동일한 방법으로는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얘기다. 이번 하나로텔레콤 인수가 끝이 아닌 새로운 전쟁의 시작일 뿐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SK텔레콤의 다음 전략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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