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정철우기자] "내 그럴 줄 알았다. 그 양반이 정말 깐깐하다니까." 지난 6일 '적토마 ' 이병규(주니치 드래곤즈)가 2군으로 떨어진 것에 대한 이종범(37)의 첫 반응이었다.
이종범은 지난 1998년 주니치에 입단, 2001년까지 뛴 경험이 있는 이병규의 일본 무대 선배. 그가 지칭한 그 양반은 다카시로 노부히로 주니치 야수 종합 코치였다. 자신의 아픈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카시로 코치는 이병규의 2군행 이유를 묻는 질문에 "타격이나 수비 모두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 언론은 이를 두고 "이병규가 불성실한(해 보이는) 수비 때문에 2군에 갔다"고 해석했다.
다카시로 코치는 99년 주니치 코칭스태프에 합류, 2001년까지 활동했다. 이종범이 뛰던 시기와 일치한다. 이후 니혼햄,지바 롯데 등을 거쳐 지난 2004년 다시 주니치에 합류했다.
이종범은 "다카시로 코치는 내가 있을 때도 그랬다. 유격수이던 나를 기본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괴롭히더니 결국 외야로 돌렸다. 병규가 나처럼 고생하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빨리 전화라도 해줘야겠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종범은 당시의 포지션 변경이 결국 타격에까지 영향을 미쳐 결과적으로 일본 진출이 실패로 귀결되는 아픔을 겪은 바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역시 주니치 출신인 선동렬 삼성 감독도 다카시로 코치와 좋지 않는 기억을 갖고 있다. 이종범 그리고 이병규에 얽힌 얘기를 듣더니 잠시 알 듯 말듯한 미소를 짓다 지난 얘기 한토막을 들려줬다.
"99년 슈퍼게임을 준비하려고 외야에서 러닝하다 잠시 쉬고 있는데 공이 날아와 뒤통수에 정통으로 맞고 쓰러졌다. 다카시로 코치가 친 펑고 타구였다. MRI까지 찍을 만큼 심각한 상황이었다. 결국 슈퍼게임엔 나가지도 못했다."
이쯤되면 '악연'이란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까지 맞물리면 좋지 않은 예감과 상상은 훨훨 나래를 펴게 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카시로 코치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기로 했다.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에 대해 좀 더 알게된 뒤에는 마음이 조금 놓였다.
위키피디아 등 인물 사전을 살펴보면 다카시로 코치는 비단 한국 선수 뿐 아니라 모든 선수들에게 얼음장 같은 코치로 기록돼 있다. 1기 주니치 코치 시절 후쿠도메(유격수였으나 결국 외야 전향) 다츠나미 등 주축 선수들의 수비력을 크게 꾸짖으며 강도 높은 훈련을 시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가네모토(한신)도 히로시마 시절 다카시로 코치의 엄격한 지도를 받고 수비와 주루 부분이 크게 성장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우리 선수들이 특별히 미움 받고 있는 것이 아닌 것 만은 확실하다고 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 일본 야구 전문가는 "다카시로 코치는 선수들에게 환영 받는 코치는 아니다. 다들 혀를 내두른다고 들었다. 그러나 능력만은 인정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코칭스태프와의 악연은 비단 이병규 등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 프로야구에도 인연과 악연은 선수들의 주된 관심사이자 이야기거리다.
"모 감독은 누구만 이뻐한다" , "저 선수는 감독 양아들"이란 수근거림은 어느 팀 어느 장소에서도 끊이지 않는다. 특히 팀 성적이 좋지 않은 팀일수록 이런 불만은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간혹 노골적인 배제 탓에 선수생명에 치명타를 입는 경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향으로 확대하기는 어렵다.
기회의 많고 적음은 두번째 문제다. 적게나마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잡아내기만 한다면 미워도 쓸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꾸준한 기회를 부여받는 것에 비할 수는 없다. 맘 편히 뛸 수만 있다면 더욱 좋은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심정적으로는 악연을 이야기 하는 선수들의 마음이 200% 이해되며 동정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프로의 세계에서 기회는 모두의 것 일수는 없다. 약육강식은 잔인하지만 현실이다. '악연'을 '인연'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실력 뿐이다.
다카시로 코치가 이병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속내까진 알 순 없다. 그러나 어쩌면 그의 감정은 중요치 않을 수 있다. 후쿠도메와 다츠나미가 살아남았다면 이병규라고 못할 것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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