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성의 금융CAST]日거품경제…화려했지만 참혹한

김유성 기자I 2020.06.20 11:10:00

1950년 한국전쟁 호기 맞아 급성장했던 일본 경제
일사분란한 정부 주도 성장 덕에 1980년대까지 고속성장
넘치는 유동성 거품 속에 기업경기 하락 등에 무관심
거품 붕괴 파국까지 이르러..日 닮은 우리나라는?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저금리 시대에 자산 거품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일본이 그랬고, 미국이 그랬습니다. 영국 런던의 집값이 그렇게 살인적인 것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금리가 낮은 점도 한몫 합니다. 대출 금리가 낮을 수록 돈은 빌리기 쉽고, 대출이 쉬울 수록 집값 등 덩치가 큰 자산의 가격은 오르기 마련입니다.

어찌보면 현 정부가 20번 넘게 부동산 가격 잡기 정책을 내놓는 것도 바보 같은 일일 수 있습니다. 넘치는 유동성을 규제라는 장벽으로 막는데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정부는 억지로 억지로 부동산 가격 상승을 잡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간명합니다. 실물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 와중에 오르는(폭등하는) 자산 가격은, 우리 경제에 치명적인 내상을 남길 수 있어서입니다. 꼭대기가 높아질 수록 골이 깊어지는 것처럼, 자산 거품이 크게 형성될 수록 붕괴 후 후유증은 크기 마련입니다.

히말라야 산의 꼭대기와 골짜기 (출처 = 이미지투데이)
일본 경제에 대해서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자산 가격의 꼭대기까지 갔다가 깊은 골짜기로 떨어졌던 일본 경제 얘기입니다.

1945년 패전 후 일본은 1950년 한국전쟁 덕을 톡톡히 봅니다. 미국이 일본을 재무장하는 계기가 됐던 것입니다. 소련과 중국 등 공산주의 세력에 호된 맛을 본 미국 입장에서는 일본을 자유민주주의 최전선으로 둘 필요가 있었습니다.

농업국가로 떨어질 뻔했던 일본은 한반도에서 흘린 한국인과, 미국인, 중국인, 그외 UN군의 피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이죠.

일본은 미국의 원조가 들어오면서 고도 성장을 구가합니다. 2차세계대전 때 항공모함을 만들어 대단위 해군전단을 운영할 수 있었던 산업 인프라, 미 해군도 떨게 만들었던 전투기를 만들었을 정도의 기술력이 있었던 터라, 이들의 산업 회복 속도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빨랐습니다.

독일이나 소련, 미국과 비교하면 조악한 수준이지만 탱크도 만들었습니다. 태평양 전쟁에서는 미국 경전차보다도 가벼워, 조롱의 대상이 되었지만, 중일 전쟁에서 국민당군을 휩쓸고 다녔지요.

이런 하드웨어적인 면 외에 소프트웨어적인 면이 있습니다. 일본이 서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산업국가로 성장했지만, 그 과정에는 서구 자본주의와는 분명 다른 면이 있었습니다.

(요 부분은 에드워드 챈슬러가 쓴 ‘금융투기의 역사’에서 상당 부분 발췌해 왰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좀더 일본에 대해서 알고 싶으신 분이 계시면, 현대 일본과 맞을지 모르겠으나, 2차대전 종전후 일본인들의 양태를 설명하기 위해 쓰여진 명저 ‘국화와칼’도 추천드릴게요. )

서구 자본주의의 기본 틀은 개인주의입니다. 시장경제를 유지하는 틀은 개인의 이기심이 전제된 이윤추구에 있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더 크게 잘 발달하기 위해서는 각 개인의 이윤 추구가 보장돼야한다는 게 깔려 있습니다.

반면 일본의 자본주의는 서구 자본주의와는 다릅니다. 개인보다는 집단과 자신이 속한 지역·씨족 커뮤니티를 우선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지역 영주(다이묘)가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야쿠자가 자기의 영역을 갖고 그 안에서 경영을 하는 것처럼 다이묘는 각 지역에서 영주로서 권력을 행사하고, 그 안의 무사들과 농민을 다이묘의 보호를 받으면서 그에게 충성을 다했습니다.

일본 무사
이런 전통은 2차 대전 후에도 이어집니다. 나에게 일자리와 월급을 주는 기업주가 다이묘처럼 충성을 다해야하는 대상이 된 것이죠. 심지어 그 회사에 다니는 노동자들을 회사 이름으로 부르는 전통이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예컨대 이런 식이죠, 도요타 자동차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도요타 상’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평생직장이란 개념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노동자는 다이묘 격인 기업주에 최선을 다하고, 기업주는 노동자의 생계를 책임집니다. 형태만 달라졌을 뿐 막부 시대의 행정구역 ‘번’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다이묘 간에도 서열이 있듯 기업 간에도 서열이 있습니다. 소규모 다이묘가 대규모 다이묘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죠. 최고 다이묘가 쇼군이 됩니다. 각 기업들은 각 산업 계열 안에서 서열화되고 이것은 ‘게이단렌’의 서열 속에 배치됩니다. 일사분란한 기업 서열도 막부 체제 하 다이묘 시대와 비슷한 것이죠.

서열이 생기면 이를 유지해야할 제3자도 필요합니다. 바로 권위이자 명분입니다. 막부 시대 때는 일왕이 이 역할을 했습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정부가 이런 서열 유지하는 신호등 역할을 했습니다. 기업들을 대상으로 행정 지도를 하는 것이죠.

예컨대 이런 식입니다. 관료들은 인허가권과 세금 감면, 정부조달 계약 배분 등을 무기로 기업을 설득하거나 윽박지릅니다. (어디서 많이 본듯 하죠. 우리나라에서도.)

정부는 말 잘 듣는 기업을 키우기 위한 여러 정책을 씁니다. 일본인이 한 저축을 저리로 몰아서 기업들에 공급해주는 것이죠. 시장금리보다 싼 이자율로 대기업에 우선 대출을 해주는 형태입니다.

그것 뿐만이 아닙니다. 수입 제한 조치를 정부가 적절히 합니다. 통관 과정을 까다롭게 하는 식으로 해서 수입 물품이 자국 시장에 들어오는 것을 통제하죠. 그러면서 일본 기업들에게는 이 수출을 잘하도록 장려합니다.

이런 구조는 1980년대까지 잘 유지됩니다. 경쟁을 지양하고, 투기를 죄악시 하는 게 일본의 기업 문화였습니다. 관 주도의 경제 정책, 경쟁을 최대한 배제한 기업간 서열 문화는 일본의 고도 성장을 극대화시켰습니다.

지금의 중국이 그러하듯, 1980년대 일본도 미국을 위협합니다. 일본이 미국을 대상으로 거두는 무역수지 흑자 역시 대규모로 늘죠. 급속도로 성장하는 2인자와 정체된 1인자간 구도가 1980년대 발생하게 됩니다. (1980년대에는 미국과 일본, 2000년대에는 미국과 중국)

남는 돈이 넘치자 일본 기업들의 해외 자산 쇼핑이 시작됩니다. 1980년대 일본은 채권 대국, 자산대국, 금융대국으로 성장합니다. ‘투기’에 눈을 뜬 것입니다.

일본 정부는 이런 기업들을 위해 금융 규제를 완화했습니다. 기업들이 합법적으로 각종 증권 거래를 하게 한 것이죠. 또 기업들이 보유 자산의 가치를 회계처리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적자가 쌓여 망해가는 기업이라고 해도 땅을 많이 갖고 있으면 건실한 기업으로 분식되는 것이죠.

1985년 기업들의 투자금융 계정은 9조엔이었는데 1989년 40조엔이 됩니다. 투자금이 모이니 자연스럽게 자산의 가치는 올라갑니다. 자산은 한정돼 있는데 돈싸들고 와서 ‘살게요’라는 사람이 늘어난 덕분이죠.

1980년대 풍요로웠던 일본 사회상을 잘 보여줬던 코카콜라 광고 캡처 화면
부동산을 팔지 않고 보유만 하고 있어도 기업들의 가치는 빠르게 올라갑니다. 수익률이 올라가는 것이죠. 물건을 팔아 어렵게 돈을 버는 것보다 손쉽게 수익을 올립니다. 개인들은 이를 보고 자산 시장에 뛰어듭니다. 재테크라는 명목 아래 말이죠.

1980년대 일본 기업들의 돈놀이와 맞물려 도쿄 증시는 활황을 맞습니다. 주가가 상승하면서 수익률이 높아지고, 또 유동성이 투입되고. 전형적인 거품이 형성된 것이죠.

사실 이때 일본 기업 제품의 국제 가격 경쟁력이 낮아진 것도 있습니다. 1985년 미국과의 플라자합의를 통해 엔화 가치를 높이면서부터입니다. 기업들이 예전보다 수출이 쉽지 않게 되면서, 이런 돈놀이는 더 환영받게 됩니다.

실제 일본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에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부동산 가격 상승에 편승했던 자산운용에 더 열심인 기업도 있었다고 합니다. 철강회사 ‘한와’는 4조엔의 돈을 굴렸고, 여기서 얻은 수익이, 물건을 팔아 올린 이익의 20배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굳이 사업 확장에 열을 올릴 필요가 없었죠.

물론 운용자산의 일부는 기계설비 투자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기업들의 설비 투자 덕분에 일본은 1980년대 후반 성장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까지는 플라자합의 이후 닥친 엔고 충격이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일본 정부도 치솟는 자산 가격과 실제 실물 경기와 괴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꼭대기가 높으면 골도 깊은 법. 그 간극(꼭대기와 골)을 메우기 위해 금리에 손을 댑니다. 그때서야 일본 국민들과 기업은 유동성 파티가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되고요. 화려했던 일본의 1980년대는 막을 내립니다.

최근 우리나라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은 자산 가격 꼭대기를 낮추는 데 주안점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실물 경제가 적절히 성장하지 않는데 부동산 가격만 올라갔다가, 뒷감당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유동성 파티는 끝나게 됩니다. 그때 받을 충격을 우리는 감당할 수 있을까요? 꼭 일본만의 일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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