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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발(發) 경제충격이 ‘대공황’급으로 확대될지를 놓고 미국 내부에서 강한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경기침체’에 빠져들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수그러질 때 글로벌 경제가 대공황급 이상의 불황으로 이어지느냐, 아니면 강한 반등으로 일어서느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형국이다. ‘폭격기급’ 달러 풀기로 일컬어지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무제한적 ‘양적완화’(QE)와 미 의회 통과가 확실시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2조달러(약 2500조원) 대의 천문학적 ‘슈퍼부양책’ 등 미 연방당국의 초강경 대책들이 잇달아 쏟아져 나오면서 현재로선 ‘후자’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관측이 다소 앞서고 있다는 평가다.
이날 뉴욕증시의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가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지난 2월 이후 처음으로 이틀째 상승세를 이어간 점도 투자자들이 루비니 교수가 아닌, 버냉키 전 의장의 손을 들어준 격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모든 수치, 침체 넘어 ‘공황’ 지목
대공황급 이상의 불황을 점친 건 대표적 비관론자로 꼽히는 ‘닥터둠’ 루비니 교수. 그는 전날(24일·현지시간) 야후파이낸스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향후 미국 경제의 양상은 ‘V자형’도, ‘U자형’도, ‘L자형’도 아닌 ‘I자형’ 경기 급전직하(a straight line down)가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대공황 이상의 불황(Greater Depression)을 키워드로 제시했다. 1929년 뉴욕 증시 폭락으로 시작한 역사상 최악의 불황보다 상황이 나빠질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모든 수치는 ‘침체’(recession)를 넘어 ‘공황’(depression)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JP모건체이스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IB(투자은행)들은 미국이 2분기 14~30%의 깊은 역성장에 직면할 것으로 관측한다. 반세기만의 최저수준을 이어오던 실업률 역시 20~30%대로 치솟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글로벌 실물경제가 녹아내리고 있는 수준이라는 점이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이번달 미국 구매자관리지수(PMI·Purchase Manager index) 예비치는 40.5로 지난달(49.6) 대비 9.1포인트 급락했다. IHS마킷이 PMI를 산출하기 시작한 이래 사상 최저다. 코로나19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여파가 금융시장의 후폭풍 이상이라는 방증이다. PMI는 각 기업의 구매 담당자를 대상으로 신규 주문, 생산, 재고 등을 설문조사한 결과로, 실물경제 예측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지표로 꼽힌다. PMI는 0~100 수치로 나온다. 50을 기준으로 이보다 높으면 향후 경기 확장 가능성이 높음을, 낮으면 경기 수축 가능성이 높음을 각각 의미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은 식당·바·호텔 등에 직격탄을 날리면서 이번달 미국 서비스업 PMI 예비치는 39.1까지 떨어졌다. 역대 가장 낮다. 지난달 49.4에서 10포인트 넘게 빠졌다. 제조업도 마찬가지다. 이번달 제조업 PMI는 49.2를 기록했다.
코로나19의 한복판에 선 업종은 이미 위기다. 국제 신용평가기관 피치는 이날 미국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의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두 단계 낮췄다. 등급 전망은 ‘부정적’이다. 자금난에 빠진 항공업계가 결국 줄도산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S&P는 미국 델타항공의 신용등급을 두 단계 낮은 ‘BB’로 하향했다. 이는 투자등급이 아니라 투기등급이다. 루비니 교수는 “경제가 침체(recession)가 아닌 공황(depression)으로 가는 요건들이 생기고 있다”며 “미국·유럽 외 세계 다른 지역들도 (정책당국의) 거대한 부양책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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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도 만만찮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연준을 이끌었던 버냉키 전 의장은 하루 뒤인 25일 경제전문매체 CNBC방송과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충격과 관련, “매우 가파르고 단기간의 침체가 있을 수 있다. 모든 것들이 그 경로로 가고 있다”면서도 “셧다운 기간 고용·비즈니스 부문에 너무 많은 타격이 가해지지 않는다면 매우 빠른 경기 반등이 이뤄질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1930년 스타일의 대공황보다는 대형 눈 폭풍이나 자연재해에 훨씬 더 가깝다”고 평가했다. 대공황과 달리, 이번 코로나19 충격은 ‘V자’ 형태의 급반등이 가능하다는 낙관론으로, 루비니 교수와의 견해와는 정반대다.
버냉키 전 의장은 금융위기 당시 양적완화(QE), 즉 장기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사들여 시중에 돈을 푸는 정책을 처음 시행했던 인사다. 그가 ‘헬리콥터 벤’으로 불린 이유다.
이에 앞서 같은 방송에 출연한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도 “단기적으로 경제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지겠지만, 코로나19 발병이 정점을 지나면 강한 반등이 이뤄질 것”이라며 낙관론에 힘을 더했다. 불러드 총재는 연준 내 대표적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로 잘 알려졌다. 그는 미국의 실업률이 일시적으로 30%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도, “다시 ‘반세기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어 “낙담하지 말라. 이번 (2분기)은 특별한 분기이고, 바이러스가 물러가고 모든 사람이 일터로 돌아오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495.64포인트(2.39%) 뛴 2만1200.55에 거래를 마쳤다. 2조달러 대의 슈퍼부양책이 임박했다는 기대감 덕분에 1933년 이후 87년 만의 최대 상승률(11.37%)을 보인 전날에 이어 이틀째 상승국면을 이어간 셈이다.
<용어설명> 대공황(Great Depression)
1929년 10월 24일 뉴욕 월가의 증시 대폭락에서 시작한 사상 최악의 불황이다. 미국의 금융시장 패닉은 곧 생산과 소비 등 실물경제 마비로 이어졌다. 기업 줄도산과 실업 대란이 잇따랐다. 이는 미국에 국한하지 않고 독일, 영국, 프랑스 같은 유럽 주요국으로 번졌다. 그 이후 경제가 회복하기까지 11년 안팎 걸렸다. 불황의 파급 범위와 지속 기간 등으로 볼 때 지금껏 그 어떤 경제위기보다 가혹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