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내 동태포 몇개 판 게 전부"…전통시장 소비실종·AI·김영란법 '3중고'

유태환 기자I 2017.01.27 08:00:00

전통시장 설 대목 겨냥해 각종 행사 개최..손님들은 외면
소비자들 지갑 닫아…소비자들 "이번 명절 간단히"
소상공인 90% 이상 "AI 피해"…"정부도 해법 내놓기 힘들어"

노량진수산사장이 설 명절을 앞두고 ‘설맞이 제수용품 한마당 대찬치’ 행사를 시작했지만 손님이 적어 통로가 한산하다. (사진=유태환 기자)
[이데일리 유태환 기자] “아무리 경기가 어렵다 해도 설 명절 앞두고는 사정이 좀 나아졌는데 올해는 해도 해도 너무하네요.”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점포를 운영하는 이모(62·여)씨는 26일 “오전 내내 고작 동태포 몇 개 판 게 전부”라며 울상을 지었다. 민어·생태 등을 파는 옆 점포 상인 이모(52)씨는 “수산물은 금방 상해 손이 많이 가는데 명절 대목인데도 찾아오는 손님이 없으니 힘이 빠진다”고 말했다.

오랜 경기침체 속에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와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소비위축까지 겹치면서 전통시장 상인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설 대목을 겨냥해 각종 이벤트 행사를 열고 손님 끌기에 나섰지만 갑작스레 찾아온 강추위에 시장골목은 썰렁하기만 하다.

◇ 지갑닫은 소비자에 전통시장 울상

특설무대가 마련된 노량진수산시장 2층에는 전국 각지의 농·수산 특산물 매장 점포들이 새로 들어섰지만 오가는 손님을 찾아보긴 어려웠다. 시장 측은 우수 농수산물 및 각종 제수용품 할인 판매, 경품 행사 등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해 손님 끌기에 나섰지만 손님들의 발길을 잡기엔 역부족이었다.

같은 날 오후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 있는 금남시장 역시 을씨년스러웠다.

금남시장은 ‘2017 설 명절 전통시장 이벤트’를 열고, 경품 증정 등 손님끌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시장 골목은 한산하기만 했다.

건어물을 판매하는 최모(42·여)씨는 “건어물은 다른 식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관이 편하고 가격대도 선물로 주고받기에 부담이 없어 추석이나 설 명절이 큰 대목”이라며 “설이 코앞인데 이렇게까지 손님이 없기는 장사를 시작한 이후 처음”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시장을 찾은 손님들도 대부분 필요한 물건만 소량으로 구입하는 모습이다.

과일을 구입한 성모(41·여)씨는 “당장 오늘 내일 먹을 사과와 귤 몇 개만 샀다”며 “살림은 어려운데 물가만 너무 올라 꼭 필요한 것만 그때그때 사게 된다”고 말했다.

반찬 거리를 사러 왔다는 김모(48·여)씨 역시 “이번 명절은 간단히 차례 지낼 정도의 음식만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소비절벽 넘어 소비실종 상태”

설 대목 실종에는 사상 최악의 살처분 사태로 이어진 AI도 한 몫을 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최근 발표한 ‘AI 관련 소상공인 피해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상공은 10명 중 9명(93.1%)는 “AI여파로 매출이 줄었다”고 답했다. 조사 대상은 계란 유통업 95명·제과점 120명·외식업 26명·기타 서비스 6명 등 총 247명이다. 특히 40~50% 가까이 감소했다는 응답도 11.8%나 됐다.

서울 관악구 봉천시장에서 전집을 운영하는 이모(52)씨는 “설 대목을 앞두고 AI 여파에 물가까지 올라 재료비 감당조차 안 돼 힘들다”며 “서민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맛에 오는 건데 가격을 올리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AI로 인한 계란 품귀현상으로 직접적으로 계란을 유통하는 소상공인은 물론 계란을 많이 쓰는 제과점과 외식업 종사자에 이르기까지 매출 감소 피해가 극심하다”며 “소비 절벽에 AI까지 겹쳐 소비 실종을 호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정래 망원시장 상인회장은 “대형 유통매장들이 상권을 잠식한 데다 계란값 등 지속적으로 물가가 오르고 있어 전통시장이 갈수록 활력을 잃고 있다”며 “지난해부터 이어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정권 자체가 위기이다 보니 정부도 전통시장 지원을 위한 대책 내놓기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설 명절을 앞두고도 손님이 없어 서울 성동구 금호동 금남시장 골목이 휑하다. (사진=유태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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