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한국은 스스로 방위비를 부담해야 한다”며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연간 100억달러(약 13조 7000억원)까지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7일 자신의 SNS에 이재명 대통령 앞으로 보낸 25% 상호관세 서한을 공개한 직후 내민 ‘안보청구서’다. 한국의 주한미군 주둔 비용은 2025년 기준 1조 4028억원으로 이대로라면 10배 가까이 급증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방위비를 GDP의 5%까지 늘리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에 따라 GDP의 2.32% 수준인 한국의 방위비도 증액 요구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한국을 향한 미국발 태풍은 관세·안보 양면의 난제가 함께 얽혀 있다. 미국이 상호관세 부과를 7월 말까지 유예해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고작 3주간의 시간을 벌었을 뿐이다. 기업들은 충격을 이미 실감 중이다. 품목관세를 적용받고 있는 승용차의 대미 수출은 지난 4월과 5월 전년 동월 대비 각각 5.7%와 9.5% 급감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 영업이익의 35%에 해당하는 9조 3430억원을 관세로 날릴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 가전 등은 관세를 못 낮추면 수출을 접어야 할 판이라는 비명까지 나왔다. 이재명 정부가 민생 회복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하반기 경제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 한국은 지난해 대미 무역에서 660억달러의 흑자를 냈었다.
이번 태풍은 이재명 정부의 대처 능력을 가늠할 외교 시험대다. 트럼프 1기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일주일 만에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하고 다음 달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불안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2기 시작 후 지금까지 만났거나 만날 예정인 각국 정상들은 30명을 넘는다. 이 대통령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을 급파해 7일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협의했지만 정상회담은 일정을 잡지 못했다.
대통령실은 대미 협상에서 “속도보다 국익을 우선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현재 미국발 태풍을 막아낼 최고의 해법은 두 정상이 속히 만나 상호호혜적인 결과를 끌어내는 것이다. 우리가 제시할 최선의 카드를 철저히 준비하고 조속한 정상회담 개최로 통상,안보 전반의 난제를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