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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천구 푸드뱅크마켓센터에서 일하는 한사무엘 사회복지사는 코로나19 장기화로 달라진 매장 분위기를 이같이 전했다.
푸드뱅크는 개인과 기업으로부터 성금과 식품, 생활용품을 기부받아 결식아동, 독거노인 등 저소득 취약계층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나눔시설이다. 슈퍼마켓처럼 제품을 진열해두고 이용자들이 지방자치단체에서 받은 바우처를 내고 무료로 가져갈 수 있다. 한 사회복지사는 “우리 매장은 코로나로 기부량이 연간 30% 정도 감소했다”면서 “이로 인해 이용자들이 가져갈 수 있는 식재료 품목 수가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저소득층에게 식품과 생필품을 공급하는 푸드뱅크가 직격탄을 맞았다. 저소득 노인과 지역 아동센터 등의 대면 무료급식이 어려워지면서 푸드뱅크 이용자들은 늘고 있지만, 기부는 오히려 20% 이상 줄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9일 서울광역푸드뱅크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시 푸드뱅크마켓 기부액(현물 원가 기준)은 403억원으로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9년에 비해 23% 감소했다. 올 상반기 기부액은 202억원으로 코로나사태가 시작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15% 증가했지만, 예년 수준에는 크게 밑돌고 있다.
문제는 코로나19 여파로 저소득 노인과 지역아동 대상 무료급식을 중단한 곳이 많을 뿐 아니라 최근 생활고를 겪는 기초생활수급자도 늘고 있다는 점이다. 푸드뱅크 수요는 계속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공급(기부)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노원구와 강서구, 양천구의 기부품목 수급불균형이 심각하다는 게 센터의 설명이다. ‘베드타운’인 노원구와 강서구의 경우 기초생활수급자가 많은 반면, 다른 지역에 비해 상권이 상대적으로 덜 발달돼 기부량이 턱 없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천구는 기초자치단체 차원의 관심도도 높고 기부량도 많았지만, 최근 코로나 사태 이후 기부 총량이 줄면서 푸드뱅크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사무엘 사회복지사는 “즉석식품이나 참치 통조림 등 먹을거리를 선호하는 이용자들이 많지만, 양이 넉넉하지 못하다”면서 “특히 고추장이나 된장처럼 시중 마트에서도 비싼 편에 속하는 식재료는 기부가 더 줄어들어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바우처는 1인당 5장씩 지급되는데, 기부 감소로 재고량이 적을수록 제품 가치가 올라가 푸드뱅크에 내야하는 바우처의 수가 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용자들이 가져갈 수 있는 제품수는 줄어드는 셈이다.
김준혁 서울광역푸드뱅크센터장은 “과거에는 식품 기업들이 재고를 주로 현물로 기부했다면 최근에는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코로나 방역물품 등에 대한 기부가 늘면서 푸드뱅크에 대한 기부는 상대적으로 줄고 있다”고 말했다. 일종의 ‘기부 분산’ 효과라는 얘기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기업의 기부만 마냥 기다릴 수 없게 됐다. 이에 서울광역푸드뱅크는 추석 전 각 자치구 동주민센터에 기부 박스를 설치하고, ‘명절 선물 나누기’를 독려할 계획이다. 김 센터장은 “대기업에서 현물 중심의 기부를 받다보니 그동안 개인 기부는 취약했다”며 “올 추석은 우리 가족들이 먹고, 쓰는 것 이상의 명절 선물이 들어오면 어려운 이웃들과 나눌 수 있게 기부에 동참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