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두보가 읊은 절경 되살린 현대 문인화

오현주 기자I 2012.03.01 16:13:07

쩡짜이동 개인전
4일까지 서울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2월 29일자 26면에 게재됐습니다.

▲ 쩡짜이동 `황하 후커우폭포`(사진=갤러리현대 강남)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산을 삼킬 듯 바위를 부술 듯 누런 물줄기가 세차다. 하늘은 푸르름이 퇴색한 회색이고 바위엔 보라색 그늘이 내려앉아 있다. 이 풍경화엔 흘러내리는 황톳빛 성난 폭포만 보일 뿐 일체 군더더기가 없다. `황하 후커우폭포`란 제목이다. 수많은 고전과 전설, 문인들 작품의 배경이 된 황하의 격렬한 몰아침을 담아낸 것이다.

“사실 나의 회화들은 진짜 전통 중국 문인화가 아니다. 나는 단지 그 옛 것들로부터 전통적인 제목과 시, 의미를 빌려올 뿐.” 쩡짜이동(鄭在東·59). 동양의 정신에 서양의 기교를 결합해 `현대적 산수화`를 개척했다고 평가받는 작가가 `진짜`를 부인해야 하는 사정은 따로 있다.

그는 대만 출신 화가다. 중국 고대 절경에 매료돼 1998년 아예 중국으로 주거를 옮긴 단순치 않은 행적이 있다. 비슷한 연배에 문화대혁명을 겪은 본토 작가들과는 달랐다. 정치도 없고 이념도 없었다. 산수만 있었다.

이백, 두보, 백거이, 이상은 등 중국 옛 문인들이 읊은 시구 속 진경을 본격적으로 찾아다닌 것도 이주한 그때부터다. `옛 것 그 자체`가 되기 위해 중국 본토로 왔다고 토로한 것이 무색치 않았다. 세월을 품은 산과 강, 폭포와 계곡들이 하나씩 화폭에 담겼다. 먹 대신 아크릴 물감을 쓴 탓에 전통 미감을 되살리기가 쉽지 않자 옛 문인들의 감성과 태도를 되짚는 데 주력했다.

한국서 작가가 여는 첫 개인전이다. 산시성 남선사, 화산, 황하, 삼청산, 양쯔강, 무이산 등 중국 대표 자연경관을 담은 현대 산수화 14점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그의 작품은 타는 듯한 강렬한 색채, 빠르고 강한 붓놀림으로 자연을 독특한 화풍으로 복원해낸 특징이 있다. 역동적인 담백함이다.

주목받는 특징은 한 가지 더 있다. 오래도록 구가돼온 유명 경관을 소재로 삼되 그 속에 현대인의 고뇌와 갈등을 흥건히 녹여낸 점이다. 단출하지만 복잡하고, 또 공허한 만큼 외롭다.

핏빛 선홍색 산등성 사이를 흘러내리는 옥색 물줄기의 선명한 대비. 유유자적하던 옛 여유는 투박하고 거친 냉정으로 전이됐다. 하지만 작가는 이 모두가 “옛 것과 나눈 대화의 정확한 기록”이라 말한다. 서울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에서 4일까지. 02-519-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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