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디지털 압수절차 개선이 김명수와 뭔 상관이냐?"…판사의 반문[e사법]

한광범 기자I 2023.02.12 13:32:56

''디지털증거 심문 허용'' 형사소송규칙 개정안 두고 법원·검찰 갈등
현재 무제한적 스마트폰 압수수색 가능…"범죄 한정으로 제한해야"
개인사생활 침해 우려 지속 제기…"檢 반발은 수사편의주의 발상"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법원 내부에서 신망이 부족한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디지털증거 압수절차 개선이 김 대법원장과 무슨 상관인가? 인권보장 차원에서 개정안에 동의하면 김 대법원장을 지지하는 법조인이냐?”

한 지역 법원 소속 A판사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디지털증거 압수수색 영장 심문 도입’과 관련해 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평소 김 대법원장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다는 A판사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 문제를 김 대법원장과 연결 짓는 것에 대해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현재의 디지털증거 압수수색 영장이 사실상 무제한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만큼, 이를 인권적 차원에서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나왔다”며 “일부에서 이를 마치 김 대법원장의 공인 것처럼 몰고 가는 모습을 보니 실소가 나오더라”고 꼬집었다.

김명수 대법원장. (사진=대법원)
실제 디지털증거에 대한 압수수색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그동안 법조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압수수색 관련 법조문은 유체물을 전제로 만들어진데 비해, 실제 수사기관에서 압수되는 핵심 증거 대부분은 스마트폰 등 디지털증거가 대부분이다.

스마트폰에 사실상 개인에 대한 모든 정보가 담겨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수사기관이 스마트폰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할 경우 압수범위에 대해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을 경우 사용자의 모든 정보가 무방비로 수사기관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수사기관의 스마트폰 무제한 압수수색 맞나” 법조계 숙제

범죄혐의와 무관한 정보에 대한 압수수색을 현재로선 막을 방법은 없어 개인의 사생활 비밀을 과도하게 침해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영장범위를 벗어난 정보의 경우 법정에서 유죄 증거로 사용될 수 없지만, 수사기관에 범죄혐의와 무관한 정보가 들어가는것은 별개의 영역이다.

더욱이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대상은 범죄혐의를 받는 ‘피의자’에 한정되지 않는다. 사건의 참고인이나 피해자, 정보의 집합체인 디지털 서버 또한 압수수색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압수수색 범위의 제한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법원을 중심으로 법조계에선 디지털증거 압수수색과 관련한 정교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하지만 광범위한 디지털증거의 특성상 수사기관이 영장청구 단계에서 압수대상을 특정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때문에 대안으로 제기된 것이 심문 등 참여권 보장이다.

이종엽 대한변호사협회장도 2021년 3월 사법정책연구원 공동학술대회 환영사에서 “디지털증거의 압수수색 절차에 있어 적법절차를 준수해 국민 기본권을 불필요하게 침해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며 “압수수색 절차에서 당사자 참여권을 충실히 보장해 절차적 적법성을 확보하고, 정보저장매체 및 디지털증거의 특수성을 고려한 각종 조치도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에 대법원이 입법예고한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은 디지털증거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심사 과정에서 판사가 압수대상을 선별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추가적인 대면심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대법원은 개정이유에 대해 “(디지털증거의) 선별압수의 원칙 준수”라며 “전자정보의 특성을 인해 사생활 비밀과 자유, 정보에 대한 자기 결정권 등을 침해할 우려가 높아 특별히 규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개정안이 실행될 경우 영장판사는 디지털증거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청구됐을 때,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심문기일을 정해 ‘압수수색 요건 심사에 필요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을 심문할 수 있다. 서면으로만 영장 발부 범위를 제한하기 어려운 경우 수사기관이나 정보 제공자 등을 불러 직접 심문을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檢 “수사밀행성 해쳐 범죄대응 심각 장애 우려” 반발

검찰은 “압수수색 영장 청구 사실과 내용이 사전에 공개되고 사건관계인 심문 절차가 진행되면 수사기밀 유출과 증거인멸 등 밀행성을 해치고 수사지연 등 신속하고 엄정한 범죄대응에 심각한 장애가 될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수사 밀행성 확보가 어려워 수사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법원 내부에선 “과잉해석”이라고 일축한다. 영장을 발부하기 매우 애매하거나, 검찰의 압수영장 청구 범위가 과도한 경우에 한해서만 사전 심문을 진행한다는 것인데, 검찰은 마치 법원이 모든 압수수색 영장청구에 심문을 진행하는 것처럼 반응한다는 지적이다.

부장판사 출신 한 B변호사는 “검찰의 반발은 마치 법원 심문을 통해 수사기밀이 유출되고, 수사방해가 이뤄질 것처럼 말한다”며 “영장주의에 따라 특정한 정보만 압수해 수사를 진행하는 게 맞지, ‘수사 편의를 위해선 최대한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는 건 수사편의주의 발상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검찰의 반발 역시 법조계에선 예상했던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수사 편의에 무게중심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검찰 입장에선 법원이 심문을 통해 디지털증거에 대한 압수수색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 탐탁치 않은 것은 당연지사라는 것이다.

B변호사는 현재 검찰의 반응을 1990년대 중후반 구속영장 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 도입 당시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당시에도 검찰은 지금과 같은 ‘수사 방해’ 논리를 구사했다. 제대로 된 수사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이 같은 검찰의 강력한 반발에 따라 영장실질심사제도는 지금과 같이 정착되기 전까지 ‘원하는 피의자에 한한 경우’로 축소됐다가 현재와 같이 전면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제도 시행 후 구속영장 발부건수는 지난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법조계 관계자는 “국민의 기본권 보호가 검찰의 존재이유”라며 “‘피압수자 개인정보를 침해하지 않는다. 믿어달라’는 식의 태도가 아니라, 실질적인 방지장치를 만든 후 이를 전제로 수사를 효과적으로 할 방안을 고민하는 게 순서에 맞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