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뜻한 현악기 소리로 시작하는 노래 “Bitter Sweet Symphony”는 영국 록 밴드 더 버브(The Verve)의 대표곡이다. 1990년대 돌풍을 일으킨 영국 모던 록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명곡이기도 하다. 이 곡은 1997년 발표되자마자 영국 싱글 차트 2위에 올랐고, 24주 동안 차트에 머물렀다. 이듬해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도 12위에 오를 정도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음원 다운로드, 실제 음반 판매, 광고음악 삽입 등 이 곡의 퍼블리싱 관련 매출은 총 500만달러(약 6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Bitter Sweet Symphony”를 작곡한 리처드 애쉬크로포트는 지금까지 이 곡으로 한 푼도 벌지 못했다. 곡 도입부에 사용한 현악기 소리가 롤링스톤스의 1965년 곡 “The Last Time”의 오케스트라 버전을 도용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더 버브가 해당 음원을 무단으로 사용한 것은 아니다. 저작권료의 50%를 지급한다는 조건으로 적법한 절차에 따라 허락을 받고 샘플링했다. 하지만 “Bitter Sweet Symphony”가 인기를 끌자 롤링스톤스 곡의 출판권을 보유한 ABKCO는 “약속했던 것보다 더 많은 분량을 인용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애쉬크로포트는 저작권자에 롤링스톤스의 믹 재거와 키이스 리처드를 추가하고, 이 곡으로 발생하는 모든 저작권료를 포기하기로 합의했다.
더 버브는 “Bitter Sweet Symphony”를 통해 메이저 밴드로 올라서는 인기를 끌면서도, 돈은 벌지 못하는, 노래 제목대로 ‘달콤씁쓸한’ 상황이 된 셈이다. 심지어 이 곡이 그래미 어워드의 ‘베스트 록 노래’ 후보에 올랐을 때는 애쉬크로포트 대신 믹 재거와 키이스 리처드의 이름이 호명되는 웃지못할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애쉬크로포트는 “이 곡은 믹 재거와 키이스 리처드가 최근 20년간 쓴 최고의 곡”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록 음악계의 대선배인 롤링스톤스가 막 떠오르기 시작한 인디 밴드 더 버브의 저작권료를 강탈한 스토리는 록 역사상 가장 추악한 사건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내막은 알려진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특히 오해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더 버브가 “Bitter Sweet Symphony”의 저작권을 빼앗기는 과정에서 롤링스톤스가 관여한 것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모든 작업은 ABKCO의 사장인 앨런 클라인이 진행했다. 그는 1965년부터 1971년까지 롤링스톤스의 매니저로 일했던 인물로, 롤링스톤스 곡의 저작권과 출판권을 놓고도 여러차례 법정 다툼을 벌인 것으로 악명이 높다.
1963년부터 1967년까지 롤링스톤스의 매니저였던 앤드루 루그 올드햄도 “Bitter Sweet Symphony”의 저작권료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는 더 버브가 샘플링한 부분이 롤링스톤스의 원곡 레코딩이 아니라 자신의 프로젝트인 앤드루 올드햄 오케스트라가 편곡한 버전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100만파운드(약 15억원)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올드햄은 한 인터뷰에서 더 버브의 애쉬크로포트에 대해 “그는 자신이 곡을 썼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쓰지 않았다”고 폄훼했다.
|
애쉬크로포트의 매니저는 올해 초 재거와 리처드에게 “Bitter Sweet Symphony”의 저작권을 포기해 달라고 요청했고, 두 사람은 ‘즉각적으로, 주저없이, 조건없이’ 동의했다. 여기에는 고인이 된 앨런 클라인의 아들 조디 클라인도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앞으로 “Bitter Sweet Symphony”로부터 발생하는 저작권료는 100% 애쉬크로프트에게 지급된다. 물론 지금은 모던록의 인기가 식었고, 이 곡이 창출하게 될 매출도 예전만 못할 것이 분명하다. 더 버브는 2009년 세 번째 해체를 선언한 후 현재 활동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곡자인 애쉬크로프트에게는 더없이 기쁜 소식임에 틀림없다. 불후의 명곡을 쓰고도 몇초짜리 샘플링 때문에 작곡자로 이름을 올리지 못한 억울함을 늦게나마 풀었기 때문이다.
애쉬크로포트는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것은 돈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은 내가 한 일에 대해 이름을 올리는 것에 대한 문제였다. 이 곡을 만들기 위해 내가 쏟은 시간은 어마머마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소한 이제 내 아들에게 ‘맞아, 내가 쓴 노래야’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