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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나눠먹기식 협치는 안된다

오성철 기자I 2016.06.16 07:58:54
[오성철 이데일리 부국장 겸 정경부장]20대 국회가 비교적 순조롭게 출발했다. 국회의장직을 여당이 갖느냐, 원내1당이 갖느냐를 두고 한동안 설전이 오갔으나 새누리당이 한발 물러서면서 일단락 됐고 이후 상임위원장 배분도 일사천리로 마무리됐다.

당초 여야가 약속했던 기한(14일)보다 하루 빨리 국회를 연 것은 분명 고무적이다. 과거 13대에서 19대국회까지 평균 50일 넘게 지각개원했고 최장 125일이나 지체된 적도 있었다.

구조조정 경기회복 등 당장 눈앞에 놓인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데다 지난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누그러지지 않은 점도 예상외로 신속한 원구성에 합의한 배경 중 하나일 것이다. 어쨌든 너나 할 것없이 주문해 온 협치(協治)의 가능성을 정치권이 보여준 셈이다.

그렇다고 우려할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국회 상임위원장직을 둘러싼 ‘임기쪼개기’ 논란은 협치의 잘못된 이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새누리당은 상임위원장 임기를 2년으로 보장한 국회법 41조를 무시하고 8개 상임위원장 자리중 5개를 임기 1년의 반쪽짜리로 만드는 기형적인 결정을 내렸다. 전문성 확보를 위한 임기 보장 조항을 의원들간의 사사로운 이해관계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무력화시킨 것이다.

상임위원장 자리가 제한돼 있는데 후보군에 속하는 3·4선만 3배수이다 보니 고육지책으로 내린 결정이라고는 본질적으로는 ‘밥그릇 챙기기’일 뿐이다. 당내에서 조차 “지역구를 의식한 고참의원들의 체면을 세워 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끊이질 않는다.

논란이 커지자 정진석 원내대표가 나서 “편법이 아니냐는 지적과 채찍질은 제가 모두 감당하고 가겠다”며 봉합에 나섰지만 총선에서 참패한 새누리당이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다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전반기 국회에서 상임위원장직을 맡게 된 5~7명의 의원들은 해당 위원회에서 활동한 경력이 없는 비전문가다. ‘힘센 상임위’에 속하는 정무위나 기재위 등은 해당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유력한 1순위 후보를 제치고 당내 계파간 역학관계에 의해 위원장이 정해졌다. 그 과정에서 공공연하게 미운 털이 박힌 누구누구는 안된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왔다. 또 후반기에 위원장을 약속받은 의원들을 다른 상임위로 배정되는 꼼수도 등장했다.

의원들의 상임위 배정에서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 출신의 김종석의원(비례)이 전공과 무관한 외교통일위에 배치된 거나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을 지낸 김승희 의원(비례)이 안전행정위로 떨어진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여야는 의회 정치의 회복을 부르짖으며 ‘달라진 국회’ ‘일하는 국회’를 다짐하고 있다. 그 중심은 상임위원회다. 모든 입법 활동의 핵심적인 기구이고 최소 수십개의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을 관할해야 하는 상임위 업무를 파악하는 것은 제 아무리 똑똑한 의원들이라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한두달로는 턱없이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임기를 쪼개고 전공과 무관한 인물들을 앉혀 놓는다면 일하는 시늉만 하다가 임기를 끝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회는 전문성을 도외시한 나눠먹기식 인사로 스스로 권위를 깎아내렸다. 정치권은 어쩌면 냉랭한 여론을 의식해 잠시 몸을 낮췄을 뿐 달라진 게 없는지도 모르겠다. 자칫 원만한 국회 운영을 내세워 향후 여야간 협상에서도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흐르는 건 아닐까 우려스럽다.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얽매인 타협은 협치가 아닌 야합(野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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