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쓸 행정에 투자자 울화

조선일보 기자I 2008.06.10 09:26:00

폐쇄형 베트남펀드
"일부 베트남 펀드, 세금 기준 없어 환매 못해줘요"
국세청, 과세기준 묵묵부답
상장됐으나 현금화 못해
"가뜩이나 반토막 났는데…"

[조선일보 제공] 작년 초 베트남 펀드에 투자한 회사원 민모(41)씨는 지난달 급한 사정이 생겨 펀드를 현금으로 바꾸려 했다가 울화통이 터졌다. 처음 이 펀드에 가입했을 때 증권사 창구 직원은 "폐쇄형 펀드라 5년간 중도 환매가 불가능하지만 펀드가 증권거래소에 상장되기 때문에 주식처럼 팔아버리면 현금화할 수 있다"고 권했다. 민씨는 그 말을 믿고 있다가 최근 증권사 지점에 찾아가 환매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자세한 이유를 증권사 본사에 전화로 물었더니 "세무 법률 부분이 해결 안 됐기 때문이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민씨는 "처음 약속했던 것과 완전히 다르지 않으냐"라고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지난해 인기를 끌다가 최근 수익률이 급락하고 있는 베트남 펀드 투자자들이 환매를 하지 못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 증시에 상장된 베트남 펀드가 황당하게도 과세문제라는 '규제 전봇대'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과세 기준 없어 주식거래 끊겨

2006년부터 수익증권 형태로 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운용되고 있는 일부 베트남 펀드에 대해 국세청이 명확한 과세 기준을 제시하지 않아 투자자들이 펀드 환매를 못해 돈이 묶여 있다. 현재 이에 해당하는 펀드는 한국투신운용 '한국월드와이드베트남혼합1·2'이다. 지난 5일까지 국내에 팔린 폐쇄형 베트남 주식 공모 펀드 설정 잔액 3989억원 중 50%인 1987억원이 손실 위험을 피하지 못한 채 펀드계좌에 잠겨 있는 것이다.

원래 폐쇄형 베트남 펀드는 규정상 중도 환매가 금지돼 있지만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에 따라 거래소에 상장하면 중도 환매가 허용된다. 급한 사정이 있어 돈을 찾으려는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펀드 매매에 대한 과세 기준이 애매모호해 투자자들이 상장 펀드의 주식을 팔지 못하고 있다. 해당 증권사는 "명확한 과세 기준 없이 주식을 거래시켰다가 나중에 과세 당국의 유권해석이 내려져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이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라며 환매를 거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런 펀드들의 주식 거래가 수개월째 끊긴 상태다.

2006년 12월 어머니와 함께 베트남 펀드에 1억5000만원을 넣은 회사원 박모(37)씨는 요즘 가슴이 답답하다. 수익률이 마이너스 40% 정도까지 떨어졌는데 펀드를 환매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박씨는 "베트남이 IMF 위기까지 간다는 말이 나오는데 환매도 못하게 돼 있으니 불안한 마음에 일이 손에 잘 안 잡힌다"고 말했다.


◆답이 없는 금융 당국

2006년 말 "거래소에 상장시키면 중도 환매가 가능하다"는 증권사 권유로 7300만원을 베트남 펀드에 넣은 회사원 신모(35)씨는 지난달 초 금융감독원에 이 문제로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한 달째 답변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신씨는 "반 토막 난 돈이라도 찾겠다는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며 억울해했다.

베트남 펀드가 반 토막 나고, 중도 환매 길까지 막혔는데 아무도 해법을 내놓지 않고 있다. 증권사로부터 수 차례 과세 기준 질의를 받은 국세청도 묵묵부답이다. 국세청 법규과 담당자는 "이메일·전화로 들어온 비공식적 질의에 대해 답할 의무가 없었다"며 "세법상 펀드를 매매할 때마다 과세시키면 아무 문제 없다"고 했다. 그러나 "매매할 때마다 과세하는 게 시스템상 불가능하다"고 증권사 측이 반박을 제시하자 "자세한 내용까지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국세청 상급 기관인 기획재정부 관계자도 "담당이 얼마 전 바뀌었고, 국세청으로부터 보고받은 게 없다"고 밝혔다. 펀드 허가를 내준 금감원은 "과세는 세법에 따라 국세청 등 세무 당국이 결정할 사항이라 우리가 선뜻 나서기 힘들다"고 밝혔다.

이런 혼동이 생긴 이유는 상장 펀드의 성격이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펀드를 일종의 채권으로 분류해 거래 차익에 소득세를 부과할 것인지, 아니면 일반 주식처럼 비과세할 것인지에 대해 국세청이 해석을 내려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전병목 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통 금융상품이 새로 나오면 거기에 대한 과세가 뒤처져서 나올 수밖에 없다"며 "원활한 질의·답변 과정을 통해 세무 당국이 규정을 빨리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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