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배장호기자]술 그리고 골프. 요즘 나라를 시끄럽게 만든 주범이지만 증권사 법인영업맨들에게 있어 술과 골프를 빼놓고 일을 논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이 분야에서 여성이 설 자리를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대한투자증권이 최근 팀장으로 발탁한 이혜나(사진·32)씨는 38년 대투 역사상 가장 젊은 팀장이다. 이 팀장은 무엇보다 여성이란 성별이 핸디캡이 되는 법인영업 분야에서 맹활약하고 있어 더 주목받고 있다.
"초기엔 저도 여느 법인영업맨들처럼 주말마다 골프치러 나가고 폭탄주 자리를 마다하지 않았죠. 하지만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많이 진출한 요즘에는 상황이 많이 바뀌어 가고 있어요"
이 팀장이 맡고 있는 프라임마케팅팀은 영업 타겟이 연기금 등 기관이라는 점에서 여느 법인영업팀과 다를 바 없지만 영업 스타일은 '관계'보다는 '상품' 자체, 특히 헤지펀드 등 대안투자상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처음엔 고객과의 관계가 중요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관계가 형성된 이후부터는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금융상품을 시의적절하게 제시해 줄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이 팀장은 지난해 9월부터 대투증권에 합류했지만 이미 2000억원의 기관자금을 유치하는 수완을 증명해 보였다.
이 팀장은 해외펀드 특히 파생상품펀드 전문가다. 현재 팀장을 포함해 4명으로 꾸려가고 있는 프라임마케팅팀은 이러한 이팀장의 장기를 살려 국내 투자자들에게 보다 좋은 상품을 중계 판매할 방침이다.
"국내 영업기반이 없어 국내 고객들에게 상품을 선보이지 못하는 외국 운용사들중에 의외로 좋은 상품을 보유한 곳이 많습니다. 이런 상품들이 반드시 대투 프라임마케팅팀을 거쳐야만 국내에 선을 보일 수 있도록 만들 생각입니다."
이 팀장은 프랑스 악사(AXA) 등 국내 고객엔 생소하지만 자산운용역량이 검증된 10여개의 해외펀드 마케팅 리소스를 이미 보유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척박한 국내 파생상품 시장에 대해서도 이 팀장은 모종의 사명감을 내비친다. "파생상품 시장만 놓고 본다면 국내 시장은 외국사들에게 완전 잠식당한 상태입니다. 근래 투자자들에게 큰 인기인 주가연계증권(ELS)의 대부분이 외국 증권사들로부터 비싼 값에 그대로 들여온 '백투백(Back-to-back)'상품이죠."
이 팀장은 앞으로는 이들 외국사들이 국내 시장에서 땅짚고 헤엄치는 식의 손쉬운 금융상품 수수료 장사 행태를 바로잡아 공정한 해외펀드 시장을 만들겠노라고 호언한다.
실제로 이 팀장은 최근 해외펀드 상품을 들여오면서 기존 관행처럼 돼있던 외국사와 국내사간 8대2의 불평등한 수수료 배분비를 5대5로 관철시킨 바 있다.
대투증권은 이혜나 팀장 외에도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여전사(아마조네스)들을 조용히 길러내고 있다. 국내는 물론 향후 중국시장 등 아시아 증권업계에 강력한 여풍(女風)을 몰고 올 주역들로 키운다는 게 대투증권의 복안이다.
이 주인공은 대투증권이 지난 1월 선발한 35명의 여자 신입사원들이다. 대투증권은 이례적이게도 신입사원 전원을 여성들로만 채웠다. 회사측에 따르면 이들을 계약직으로 선발했지만 2년후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정규직 전환이 가능하다.
국내가 아닌 아시아 등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인재들인만큼 이들의 어학 실력도 수준급이다. 중국시장을 겨냥해 1명의 화교와 현지에서 교육받은 사원이 2명 더 있고, 미국 유학파 출신도 2명 포함돼 있다.
대투증권 관계자는 "머지 않은 미래에 이들 여성 인력들만으로 정예팀을 구성해 중국 등 해외시장을 종횡무진토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