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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아일랜드가 수교를 맺은 것은 1983년이지만 양국의 인연은 성골롬반외방선교회가 한국에 처음 선교사를 보냈던 193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제 강점기 치하에 있던,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에 올 결심을 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것이 양국 교류의 첫 시작이었다. 선교사들은 인심 좋고 순수한 한국 사람들에게 큰 애정을 느꼈다고 한다. 전쟁조차 한국 교구민을 향한 애정을 끊어내질 못했으니 목숨을 건 이들의 사랑에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페스티벌 개막을 알리는 국악이 울려 퍼지고 아일랜드 측 주빈의 축사가 이어진 뒤 무대에서 한 특별 태피스트리(다양한 색실로 그림을 짜 넣은 직물)가 소개됐다. ‘기억으로 엮인’(Woven in to Memory)이라는 제목의 이 태피스트리에는 7명의 젊은 아일랜드인 얼굴이 그려져 있는데 1950년 한국전 발발 후 종군 봉사과정에서 순교한 골롬반 선교사들이다. 전쟁이 터지고 고국으로 돌아갈 기회가 있었음에도 자신이 담당한 교구민들을 내팽개치고 갈 수 없어 고난을 함께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다양한 K컬처 체험관 외에도 ‘한국-아일랜드의 연결’(Korea-Ireland Linkage) 홍보관을 열어 수교 전부터 양국 관계에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해 온 참전용사, 최근 선종한 천노엘 신부를 포함해 골롬반 선교사의 삶을 기리고 조명할 수 있는 책자와 영상, 사진 자료를 비치했다. 행사가 끝나고 선교사 가족들은 올해 순교 75주년을 기념해 작은 행사라도 열 수 있길 바랐던 소망이 생각지 못하게 크고 멋지게 실현됐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사실 감사는 우리가 해야 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흐릿해질 수 있는 양국 관계의 시작점, 그 중요한 역사적 사실과 인물에 대해 일깨워 주었기에.
선교사 가족도 이제 60대가 훌쩍 넘어 더 늦기 전에 순교자들에 대한 기억을 남기는 작업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대사관은 태피스트리를 본떠 만든 액자를 기증받았는데 액자에는 고(故) 케빈 오록(Kevin O’Rourke) 선교사이자 교수의 ‘인 더 블러드’(In the blood)라는 시가 게일어·영어·한국어로 번역돼 있다. 한국과 한국민을 향한 애정이 절절히 느껴지는 시다. 우리는 이 사랑을 이번 축제에서 다시 확인했다. 한국과 아일랜드가 오래전부터 나눠 왔던 우정이 씨줄과 날줄을 교차해 만드는 태피스트리처럼 이제 우리의 기억으로 엮이고, 핏속에 남아 계속 흘러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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