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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영상에는 범인 엄인숙의 두 번째 남편이었던 고(故) 임모씨의 누나 A씨가 출연해 “지금 내 앞에 (엄인숙이) 있으면 죽일 것 같다”고 심경을 밝혔다.
A씨는 엄인숙을 처음 만났을 때가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했다. 그는 “딱 보자마자 예뻐서 깜짝 놀랐다. 지나가면 사람들이 한 번씩 쳐다봤다. 진하게 화장하면 좀 섹시해 보이고, 화장 안 했을 땐 청순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감쌌다”고 떠올렸다. 실제 엄인숙을 만난 수사관들도 “배우만큼 예뻤다”며 그의 외모를 언급한 바 있다.
방송에 따르면 엄인숙은 평소 자신을 ‘명문여대 유아교육학과를 졸업해 서울 강남의 사립유치원에서 일하는 교사’라고 소개했다. ‘아버지는 건축업을 하며 오빠는 육군사관학교에 다닌다. 동생은 미국 유학을 가 어머니가 미국에서 동생 뒷바라지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아버지가 내 앞으로 한 10억 정도의 재산을 남겨줬다”며 부를 과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상견례 자리에는 엄인숙이 가족 없이 혼자만 나와 있었고 A씨는 이를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럼에도 엄인숙과 임 씨는 만난 지 불과 2~3개월 만인 2002년에 동거를 시작했다. 그해 11월 임 씨는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전치 4주의 허리 골절 진단을 받았고 한 달 뒤에는 오른쪽 눈이 실명됐다고.
당시 엄인숙은 임 씨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고 한다. A씨는 “동생이 병원에 있을 때 엄인숙이 갑자기 임신했다고 하더라. 동생 말로는 그 여자가 그렇게 강제적으로 (성관계를) 하려고 했고, 임신이 되게끔 엄청 노력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엄인숙은 임씨가 병원에 입원한 상태임에도 혼자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를 했다고도 전했다.
그런데 혼인신고 후 병원에 있던 임 씨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졌다고. A씨는 “주삿바늘 꽂는 곳마다 붓기 시작했다. 하도 꽂을 데가 없으니까 발에도 꽂았다”며 “아프다는 얘기만 계속했다. 나한테 (병원에) ‘빨리 오라’고, 엄인숙이 있을 땐 ‘가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임 씨는 결국 2003년 2월 12일 사망했다. 이후 엄인숙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A씨는 “다른 사람을 보는 느낌이었다. 일단 상복을 거부했고 말투가 바뀌어서 가족들이 당황했다”며 “부검을 원한다고 하니 울고 불며 ‘어떻게 사람을 두 번 죽이냐’고 그랬다. 남들이 봤을 땐 우리가 나쁜 사람 같았다”고 털어놨다.
부검을 진행했으나 임 씨의 사인은 불명이었다. 엄인숙은 임 씨 식구들과 연락을 두절한 채 잠적했고 보험금 3880만 원을 수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설계사였던 엄인숙의 범행 대상은 다양했다. 첫 번째 남편과 두 번째 남편, 엄마와 친오빠의 눈을 실명시켜 보험금을 받아내고 불을 질러 화상을 입힌 뒤 보험금 3억 원을 타기도 했다. 또 집 화재를 빌미로 가사도우미의 집에 기거하다 방화를 저질러 그의 남편을 숨지게 하기도 했다. 일련의 사건으로 수령한 보험금은 모두 유흥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엄인숙은 2000년 5월부터 2005년 2월까지 5년간 3명을 살해하고 7명에 중상을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2006년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