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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앱으로 귀성표 웃돈거래"·…기는 단속에 나는 암표상

유현욱 기자I 2017.01.26 06:30:00

'떴다방'식 뒷거래 속수무책
정부 "개인 정보 파악할 수 없어 단속 쉽지 않아" 토로
지난 10년간 과태료 처분 '제로'
홍철호 의원 "과태료→벌금형으로 전환해야"

설 연휴 기간 열차승차권을 구매하려는 시민들이 지난 10일 오전 서울역에서 예매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유태환 기자)
[이데일리 유현욱 기자] “설 명절 KTX 기차표 양도합니다. 꼭 필요한 분만 문자로….”

회삿일로 미처 열차표를 예매하지 못한 유모(30)씨는 한 포털 사이트 중고나라에서 열차표 매매 글을 본 뒤 부리나케 문자를 보냈다. 판매자는 “7시간이나 기다려 어렵게 구한 표”라며 웃돈 3만원을 요구했다. 유씨가 조금 깎아달라고 흥정을 걸자 판매자는 “산다는 사람은 줄을 섰다”며 매몰차게 거절했다.

설이나 추석 등 명절 때마다 열차표 사재기에 이은 불법 뒷거래가 횡행한다. 뒷거래가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온라인 중고 장터에선 아예 기차표 거래를 금지하고 있지만 ‘떴다방’식으로 치고빠지는 암표상들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단속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중고나라 검색 하자 암표 판매글 주르륵

25일 포털 사이트 카페 중고나라에서 ‘기차표’ ‘KTX’를 입력한 결과 10여건이 넘는 설 명절 기간 기차표 매매 글이 떴다. 대부분 5매 이하 개인 거래지만 가족석 4자리를 20매 이상 묶어 판매하는 글도 눈에 띄었다. 일부는 “원하는 구간과 시간대를 알려주면 표를 구해주겠다”며 사람들을 유인했다.

수법도 다양하다. 계좌로 돈을 이체받은 뒤 등기우편으로 실물 티켓을 보내거나, 직접 만나 돈과 티켓을 교환하는 고전적인 방식부터 코레일 앱에서 모바일 티켓 화면을 스크린샷으로 저장해 보내는 방법도 쓰인다. 표를 예약한 코레일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보낸 뒤 설 연휴가 지나면 해당 아이디를 폐쇄하거나 비밀번호를 변경한다. 온라인 예매후 프린트한 티켓을 PDF파일로 저장해 판매하기도 한다.

이런 사적 거래는 엄연히 불법이지만 현실적으로 단속은 쉽지 않다.

중고나라 운영사인 큐딜리온 측은 설 명절 기차표 예매가 시작된 지난 10일부터 연휴 마지막 날인 오는 30일까지 모든 기차표 거래를 금지했다. 운영자는 거래 관련 글을 삭제하고 게시자는 30일간 활동을 정지시킨다. 암표 신고 게시판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약 1517만명이 회원으로 가입한 이 곳에서 새벽 시간 대에 주로 이뤄지는 뒷거래를 차단하기란 불가능하다. 개인 간 뒷거래가 비일비재 하지만 지난 2주 동안 중고나라에 접수된 암표 거래 신고는 고작 17건에 그쳤다.

대학생 최모(25·여)씨는 최근 이 곳에서 서울과 동대구를 오가는 KTX 기차표를 5만원에 팔았다. 최씨는 “기차표 거래 금지 공지가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며 “표가 팔린 뒤에 게시글을 지웠다”고 말했다.

◇정부 ‘뒷짐’…지난 10년 간 단속 실적은 전무

명절 기차표 예매에 실패한 사람들은 이런 온라인상에서 이뤄지는 뒷거래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단속을 피해 올라오는 판매 글을 찾느라 밤마다 사이트에 접속해 ‘새로 고침’을 누르는 수고로움을 감당해야 한다.

오모(21)씨는 “터무니 없이 비싸게 사는 게 속이 쓰리지만 설 연휴에 혼자 서울에 남아 있을 순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단속 책임과 권한이 있는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온라인 거래 특성상 개인거래를 단속하려면 개인정보를 확인해야 하는 데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철도사업법에 따르면 철도사업자가 발행한 승차권 또는 할인권·교환권 등을 구입가를 초과한 금액으로 타인에게 판매할 경우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국토교통부가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홍철호 새누리당 의원 측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8년부터 최근까지 정부의 암표 판매자에 대한 과태료 부과 실적은 전무하다.

국토부 측은 부당거래 사이트 폐쇄 및 게시글 삭제 요청 등 대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암표 거래 게시글을 포착해도 인터넷 사업자를 통해 실명 등 개인정보를 강제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탓에 단속에 한계가 있다”며 “개인정보를 취득하려면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야 하는데 형사처분이 아닌 과태료 등의 행정처분은 영장 청구목적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홍 의원은 “행정처분인 현행 과태료 규정을 형사처분인 벌금형으로 전환해 암표판매자의 개인정보 파악을 위한 법원 영장발부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암표 거래에 대신 연휴 임박해 나오는 반환표로 눈을 돌리는 이들도 적지않다. 지난해의 경우 설 명절(2월 5~10일) 열차표 371만 2000장 중 110만 9000장이 반환됐다. 이 중 절반 넘는 59만장이 출발 하루 전부터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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