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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독일은 차량 간 충돌로 인한 속도 변화가 시속 11㎞ 미만이면 부상 위험이 없다고 판단해 대인 보상을 아예 면책한다. 스페인 역시 충격 정도를 의학·보험계가 공동 판단해 치료 기간을 사전에 설정하는 경미사고 보상 체계를 운영한다. 반면 한국은 저속 충돌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과잉 보상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올해 1~9월 경상환자(상해등급 12~14급)의 자동차보험금 건당 평균 지급액은 96만 3000원으로 2년 전 대비 13.2% 증가했다. 단기간 치료로 충분한 수준임에도 휴업손해와 향후치료비(합의금) 등이 더해지며 지급액이 급증하는 구조다. 실제로 작년 병원 1곳당 경상환자 진료비는 49만 5000원에 불과했다.
문제는 지급되는 향후치료비가 본래 취지와 다르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2019~2022년 향후치료비를 받은 144만 3000명 중 동일 병명으로 6개월 이내 추가 치료를 받은 비율은 15.8%에 그쳤다. 대부분의 금액이 생활비 등 다른 용도로 쓰이면서 정상적인 자동차보험 가입자들이 보험료 부담을 떠안는 구조적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
경상환자 중심의 보험금 폭증은 중상환자와 비교해도 뚜렷하다. 올 1~9월 중상환자(상해등급 1~7급)의 건당 평균 보험금은 1580만 2000원으로 2년 전보다 5.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장기간 치료와 후유장해 위험이 큰 중상환자보다, 상대적으로 치료 기간이 짧은 경상환자에서 증가세가 더 높은 셈이다.
이 같은 현상의 핵심 원인으로는 ‘한탕주의식’ 과잉 청구가 꼽힌다. 국내에서 시속 0.2~9.4㎞ 저속 충돌 실험을 진행한 결과, 차량은 범퍼나 도어 등 외부 패널이 일부 손상되는 수준이었고, 탑승자가 받은 충격은 놀이공원 범퍼카와 유사한 것으로 분석됐다. 그럼에도 일부 경상환자는 여러 의료기관을 전전하며 평균 24일을 입원하는 등 과도한 치료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한방병원에서의 장기 입원·치료 유도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4대 손보사(삼성·현대·DB·KB)의 한방병원 치료비는 1조 1032억원으로 전년 대비 9.7% 증가했다. 일반 병실이 없다는 이유로 상급병실 입원을 권유하는 사례도 포착됐다. 반면 의과 치료비는 5679억원으로 10.6% 감소했다.
경미사고 이후 모호한 판단으로 중상환자로 분류되는 사례도 문제다. 예를 들어 추간판(디스크)탈출증(9급)은 교통사고 시 척추 골절이 수반돼야 하지만 기왕증을 근거로 보험금을 청구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뇌진탕(11급) 역시 객관적 검증 없이 ‘머리가 아프다’는 단순 진술만으로 등급이 부여되는 사례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경상환자의 8주 초과 장기 치료 필요성을 심사하도록 하는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자배법) 개정안은 의료계 반발로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보험업계는 입원 기준 부재가 보험금 왜곡을 키우는 만큼, 이 부분도 병행해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저속 충돌에 대한 불인정 기준을 마련하면 경상환자 보험금 남용을 상당 부분 차단할 수 있다”며 “향후치료비도 약관이나 자배법에 존재하지 않는 만큼 지급 기준을 명확히 만들어 제도 합리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