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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교환 후 가격 똑같이 올랐으면 담합”…‘제2의 라면담합’ 원천봉쇄

김형욱 기자I 2018.08.26 12:00:00

[공정법 전면개편]④
'외형상 일치·관련 정보교환은 담합' 법률상 추정 근거 마련
'담합 근거될까…'동종업계 간 발전적 정보교환 위축 우려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공정위 제공.


[세종=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앞으로 기업들이 정보교환 후 가격이 똑같이 올렸다면 구체적으로 담합 증거가 없더라도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을 지난 24일 입법예고했다고 26일 밝혔다.

공정위는 소비자 보호를 위해 2개 이상 기업이 물밑 협의를 통해 가격을 담합하면 과징금을 내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끼리 암묵적으로 이뤄지는 담합 사건의 특성상 명확한 증거가 없어 규제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다. 대표적인 게 ‘라면 담합 사건’이었다.

공정위는 2012년 농심과 삼양, 오뚜기, 한국야쿠르트가 2000~2010년 여섯 차례 가격을 공동 인상 과정에서 담합을 했다며 총 108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들이 이 기간 ‘라면거래질서 정상화협의회’란 정보교환 창구를 만들었고 가격인상 때마다 출고가가 원 단위까지 똑같았다는 걸 담합 제재 근거로 삼았다. 공정위는 시장점유율 70%인 농심이 만든 안을 다른 회사가 이를 교환했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5~2016년에 걸친 업체들의 시정명령 취소 소송에 대해 구체적인 담합 증거 불충분하다며 과징금을 돌려주도록 했다. 업계 1위인 농심이 가격을 올리면 나머지가 뒤따라가는 오랜 관행일 수도 있었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라면담합’ 판결은 사실상 경쟁당국의 손발을 묶는 결과를 냈다. 현실 속 담합은 상당수가 정보교환 등을 통한 동조적 합의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한 해 앞선 2014년에도 공정위가 적발한 생명보험사 담합 역시 무혐의 처리했다. 공정위는 잇따른 담합 패소 판결에 4년 동안 조사해 오던 시중은행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의혹 수사도 중단하며 사실상 무혐의 판정을 내렸다. 법원 판결을 고려했을 때 조사 개시의 근거가 됐던 은행 실무자끼리의 채팅방 대화를 묵시적 담합으로 볼 수 없으리란 판단에 따른 것이다.

공정위는 이에 이번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 과정에서 사업자 간 외형상 일치가 있고 이에 필요한 정보를 교환했다면 사업자 간 합의가 있는 것으로 법률상 추정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사업자 금지 행위 유형으로 ‘사업자 간 가격·생산량 등 정보교환으로 실질적인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를 추가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실제 이뤄지는 많은 담합은 정보교환 등을 통한 동조적 합의이나 현행 법으론 처벌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미국이나 유럽연합(EU) 같은 선진국 공정법도 이번 개정 내용처럼 정보교환 같은 ‘묵시적 담합’도 담합으로 인정하고 있다. EU는 정보교환 그 자체를 담합 근거로 삼고 미국 역시 주요 입증 근거로 활용하는 추세다. EU 법원은 세계적 청과브랜드 돌(Dole)사가 매주 동종업체와 가격 정보를 교환 후 견적서 가격을 확정한 행위에 대해 1600만유로(약 207억원)의 추징금을 부과했었다.

담합과 무관한 업체 간 발전적 정보교환이 위축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브랜트 스나이더 미국 법무부 독점금지국 부차관보는 2년 전 한국에서 열린 공정위 주최 토론회에서 “미국에선 가격 인상이나 생산량 감축을 위한 정보교환은 위법”이라면서도 “사업자가 기술과 노하우, 지적재산권 등 더 많은 정보교환을 바탕으로 의미 있는 의사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가격정보 교환 자체를 담합 근거로 삼고 있는 EU 경쟁총국의 에릭 반 진더락터 카르텔국장도 “기업 간 정보교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전제했다.

한편 공정위는 같은 맥락에서 논의해 온 ‘알고리즘 담합’을 이번 개편 과정에 포함하지 않았다. 알고리즘 담합이란 온라인 예약·쇼핑사이트 등에서 똑같은 실시간 가격 산출 알고리즘을 쓰는 것 역시 사실상의 가격 담합이라는 것이다. 김상조 위원장은 “알고리즘 담합은 이제 막 국제 차원에서의 논의 중이라 이번 개정안에 담지 못했다”면서 “경쟁당국으로서 미래 시장 동향을 정확히 분석·판단해 개선 방향을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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