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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비올라, 스승 백남준 나라서 비디오아트 뽐내다

김용운 기자I 2015.03.12 07:40:58

세 번째 한국 개인전
동양정서와 테크놀로지 결합한 영상 7점 전시
"백남준, 남녀노소에 아낌없는 가르침"
국제갤러리 5월3일까지

빌 비올라가 2013년에 제작한 영상 ‘내적 통로’(Inner Passage)의 한 장면(사진=국제갤러리).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모하비사막. 화면 끝에는 민둥산이 있다. 그 산에서 한 남자가 걸어온다. 카메라는 실시간으로 그의 걸음을 화면에 담는다. 남자가 카메라 쪽으로 가까워질수록 화면은 점점 어두워지고 맥락 없는 이미지와 비명 같은 무의미한 소리가 화면을 채운다. 이윽고 조용해진 사이 불빛 하나가 희미하게 길을 비추며 어둠 속에서 남자가 드러난다. 남자는 뒤돌아서 출발했던 민둥산으로 걸어가 마침내 모습을 감춘다.

17분 12초. 한자리에서 서서 보기에는 길다. 리모컨이 있다면 빨리 돌리고 싶을 정도로 화면은 정적이다. 하지만 묘하게 시선을 끄는 매력이 있다. 작가 빌 비올라(64)는 이 작품에 ‘내적 통로’란 제목을 달았다. 사막이란 절대 고독의 공간에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내면은 외부의 고요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다.

백남준의 조수이자 제자로 한국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미국의 비디오아티스트 비올라가 5월 3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내적 통로’를 포함, 영상 설치 작품 7점을 선보인다.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미국관 대표작가였으며 미국의 휘트니미술관과 폴게티미술관, 프랑스 파리의 그랑팔레 등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 정도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작가다.

빌 비올라가 2014년에 제작작한 영상 ‘도치된 인생’(Inverted Birth)의 한 장면(사진=국제갤러리).


한국에서 세 번째 전시에 맞춰 방한한 비올라는 스승인 백남준에 대해 “내 평생 처음”이라며 “재미있고 아름다운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비올라는 1974년 모교인 뉴욕주 시러큐스대학 에버슨미술관에서 비디오아트 기술자로 일하던 중 백남준의 전시를 도우며 인연을 맺고 1979년까지 같이 일했다. 비올라는 “백남준은 노인이나 청년, 어떤 이에게도 마음이 열려 있었다”며 “비디오아트를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배울 수 있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백남준에게 사사한 경험과 1980년대 일본의 선불교를 수행한 것을 바탕으로 비올라는 시간과 종교의 메타포를 담은 영상작업을 해왔다.

하지만 비올라와 백남준은 뒤바뀐 형국이다. 백남준이 동양인이면서 서구의 테크놀로지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면 비올라는 서양인이면서 동양적인 정서를 테크놀로지 안에 담아냈다. 백남준의 전위적이고 실험적이며 짧은 영상과도 다르다.

이번 전시에서 비올라가 선보인 작품은 짧으면 7분 길면 30여분이 되는 영상들이다. 고속촬영과 슬로우모션 기법을 사용해 어지간한 인내심이 없다면 온전히 감상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일단 가보면 비올라가 느린 호흡으로 이끄는 ‘내적 통로’를 통해 잊고 있던 ‘영혼의 공간’을 찾아낼 수도 있다. 02-735-8449.

빌 비올라(사진=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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