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겸 연출가인 박근형은 새해 내놓은 그의 신작 <너무 놀라지 마라>에서 이렇게 당부한다.
제목의 ‘너무 놀라지 마라’는 ‘제발 놀라고 좀 살자’는 절규에 가깝다. 그런데 절규가 절절하지만은 않다. 한 가족의 이야기 안에 우습고 때론 기괴하게 버무려져 있기 때문이다. 줄거리만 보면 스크린이나 소설에서 봄직한 엽기, 삼류, B급의 요소들이 잔뜩 들어있다.
어느날 아버지(이규회)는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입고선 화장실에 들어가 목을 맨다. 죽기 전 자신의 자살계획을 둘째 아들(김주완)에게 말하며 누군가는 ‘너무 놀라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지만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일러둔다. 집 나가 소식을 알 수 없던 아내가 아는 이의 미망인으로 있던 장례식장에 다녀와서다. 그리곤 진짜 화장실에서 일을 치른다.
극심한 변비에 시달려온 둘째 아들은 대인기피증으로 몇년째 집밖으로 한발도 나가지 않은 터다. 시신 거두는 일은 엄두도 못내고, 화장실의 환풍기가 고장난 데다 송장 썩는 냄새까지 겹쳐지자 어쩔 줄 몰라한다. 생계를 위해 노래방 도우미를 하는 며느리(장영남)는 ‘큰아들(김영필)인 남편이 시신을 거둬야 한다’며 바쁜 연말 대목을 이유로 노래방에 평소처럼 출근한다. 오랜만에 집에 들어온 큰아들은 자신은 불효자라며 몇번 울먹이더니 장례 치를 생각은 않고 찍고 있는 SF영화의 완성에만 골몰한다. 한달째 화장실 천장에 매달려있는 아버지는 시시때때로 ‘목과 허리가 아파 죽겠으니 내려달라’고 호소한다.
연극 중반까지 웃긴 대목에서 망설임없이 웃던 관객들은 가족사의 비밀이 드러나고 결말이 가까워질수록 끔찍한 현실에 숨 죽이게 된다. 특히 남편에게 ‘눈을 뜨고 현실을 보라’며 탬버린을 들고 한바탕 춤을 추는 며느리의 몸짓은 처절해 슬프다. 둘째 아들이 배변을 위해 안간힘 쓰는 마지막 장면도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나마 배우들의 호연과 짜임새 있는 연출로 재미있게 볼 수 있다.
관객에 따라 다를 것이다. 작게는 내 가정을, 멀리는 생지옥의 팔레스타인까지 연상케 한다. 연일 강추위에도 관객이 많다. 그러나 너무나 ‘센 시대’에 살고 있는 탓인지 극장 밖을 나서며 도리어 순한 작품이 그리웠다. 2월1일까지 산울림소극장. (02)6012-2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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