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이후 생겨난 서울 달동네 개미마을 재개발 다시 추진
층수 제한과 주민 이견으로 번번이 무산된 개발인데
이번엔 통합개발 추진..변수는 ''떠나기 싫은'' 고령의 원주민
요즘 이슈인 땅(요이땅)을 이데일리가 직접 찾아가 설명해드립니다.<편집자 주>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한낮 기온이 섭씨 32도를 넘은 21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 마을 정상 공중화장실. 인왕산 등산로를 낀 이 공중화장실에서 산을 오가는 등산객이 숨을 쉬어갔다.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는 이는 외지인만이 아니었다. 화장실에서 만난 개미 마을 주민은 “이 동네는 화장실이 변변찮은 집이 많아서, 주민 상당수는 공중화장실에서 용변을 본다”고 했다.
| 21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 정상 ‘개미마을’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내려다본 홍제동 아파트촌 모습. 왼쪽에 마을 공중화장실이 있다.(사진=전재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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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몇 남지 않은 달동네인 만큼 주거 환경은 열악한 편이다. 매스컴에 문화방송 김대호씨가 사는 동네로 나오면서 서울에서 보기 힘든 목가적인 풍광의 마을로 일반에 알려졌지만, 방송이 꺼지고 여기를 살아가는 주민에게 거주는 생존의 문제다. 6·25 이후 서울로 몰려든 도시 난민이 산기슭으로 몰리면서 판잣집을 지으면서 생겨난 개미 마을. 도로나 구획 정리할 새 없이 인프라 없이 마을이 커졌다. 지금도 도시가스는 들어오지 않는다. 이후 전기와 상하수도가 연결됐지만, 허겁지겁 집을 지으면서 화장실을 놓지 못한 집이 다수였다.
교통도 불편하다. 개미 마을을 외부와 잇는 대중교통은 서대문 07번 마을버스가 유일하다. 배차간격 25분의 버스를 타고 지하철 3호선 홍제역까지 15분 정도 걸린다. 기자가 걸어보니 성인 남성 기준으로 넉넉하게 30분 거리다.
| 21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의 한 슬레이트 지붕 주택 너머로 보이는 홍제동 아파트촌 모습.(사진=전재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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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 환경을 개선하고자 개발을 추진한 지는 오래다. 애초 이 동네는 개발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개발제한구역이었다. 2006년 규제가 해제되면서 개발의 길이 열렸지만 소유관계가 복잡해 주민 이견이 거셌다. 투기 세력이 들어오면서 토지 지분이 과하게 나뉜 게 원인이었다. 결정적으로 사업성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인왕산 기슭에 있는 마을은 경관을 위해 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정해져 있다. 여기서는 건물을 4층까지 지을 수 있다.
20대부터 동네에 살았다는 주민 A(83)씨는 “개발하자는 얘기는 20년도 넘었는데 아직도 그대로”라며 “건물을 높게 못 지으니까 개발하려다가 번번이 실패했다”고 말했다.
| 21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 초입에 붙은 재개발 안내서.(사진=전재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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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와 서대문구가 꺼낸 카드는 마을 아래 ‘문화마을’과 통합 개발이다. 현재 서대문구는 홍제4구역과 문화마을, 개미 마을을 묶은 신통 기획 재개발을 추진한다. 개미 마을을 한데 묶어서 개발해 떨어지는 사업성을 만회하고, 이로써 부담을 져야 하는 홍제4구역·문화마을에는 용적률 등 인센티브를 제공해 손해를 만회해주는 전력이다. 3자가 각자 독자적인 재개발이 여의찮았던 차에 서로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달부터 주민 동의서를 받고 있다. 문화마을 주민 동의율 절반을 넘어 순항한다.
서대문구청 관계자는 “구체적인 일정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이르면 다음 달 서울시에 세 마을을 묶어서 신통 기획 재개발 후보지로 신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개미 마을이다. 문화마을과 비교해 개발 동의율이 처지는 상황이다. 개발이 길어지면서 주민 상당수는 노인이 됐다. 동네에서 만난 또 다른 주민 B(80)씨는 사흘 전(18일) 신통 기획 주민설명회에 일부러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개발을 반대하기 때문에 설명회에 갈 이유가 없었다”며 “나이가 드니 지금 사는 데에서 여생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