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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데일리 안승찬 특파원] “블랙록은 한국 자본시장에 굉장히 관심이 많습니다. 매우 발전적인 시장이라고 생각합니다.”
6일 뉴욕 맨해튼에 있는 블랙록 본사 사무실에서 만난 마이크 파일 블랙록 거시경제리서치센터장은 인터뷰 내내 한국 시장의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에 대해 여러 차례 강조했다. 블랙록은 총 운용자금이 5조달러(약 5590조원)를 넘어서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다. 글로벌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블랙록에서 거시경제분석을 총괄 책임지고 있는는 그의 말은 그 무게감이 다르다.
파일 센터장은 한국 시장이 “매우 역동적인 순간을 맞고 있다”고 표현했다. 한동안 침체됐던 한국 기업들의 수출 실적이 좋아지고 있을 뿐 아니라 한국 금융시장도 본격적으로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외국 자금의 한국 시장 유입이 심상치 않은 모습이다. 지난해 외국인은 코스피시장에서 10조8000억원 어치의 주식을 순매수했다. 올들어서도 매수세가 약화되지 않고 3개월만에 또 5조4000억원 어치를 사들였다. 역대 가장 활발한 자금 유입이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3월말 기준으로 34%까지 높아졌다. 지난해 10월 이후 6개월 연속 32%를 웃돌고 있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 “전세계 동시적 성장국면, 한국에 기회”
파일 센터장은 거시경제의 큰 그림을 보는 전문가다. 한국 시장 역시 글로벌 경제의 사이클 속에서 파악하고 있다. 그는 “경기 순환의 관점에서 현재 전세계 경제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건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만 그런 것도 아니고 유럽과 일본 역시 침체에서 벗어나고 있고 신흥국 경제도 마찬가지”라는 게 파일 센터장의 진단이다. 글로벌 경제 전체가 “동시적인(synchronized) 성장 모멘텀”을 보이고 있고 이런 추세가 여전히 확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출 기업이 많은 한국에게 이같은 글로벌 경제의 동반 상승은 더 없이 좋은 기회다. 파일 센터장은 “한국 시장은 삼성과 같은 많은 수출 기업들로 구성돼 있다”고 지적하면서 “물론 한국 내수경기가 다소 부진하고 환율 영향을 받겠지만 전세계 시장의 흐름과 함께 한국 수출 기업도 발전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낙관했다. 또 그는 미국 경제에 대해 “성장국면으로 들어섰다”고 평가하면서도 미국 주식시장이 “과도한 낙관론 때문에 유럽이나 이머징 마켓보다 고평가돼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낙관론이 거품을 만들었다고 그는 지적했다. 이같은 기대감이 실망으로 바뀌면 주가는 가파른 조정을 받게 마련이다. 블랙록이 미국보다 한국을 포함한 이머징 마켓에 관심을 두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 “과도한 트럼프 낙관론…美 시장은 고평가”
파일 센터장은 블랙록에 합류하긴 직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경제 참모로 일했다. 대통령 경제정책특별보좌관과 국가경제위원회(NEC) 자문위원을 겸직했다. 그래서인지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냉정한 편이었다. 파일 센터장은 “트럼프 정부가 미국 경제를 확실하게 부양할 것이라고 하는 `착한(good) 트럼프`에 대한 기대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 과연 이것이 가능할 것인가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공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트럼프 정부의 국경조정세(border adjustment tax) 같은 세금 개혁은 “도입될 가능성이 매우 적다”고 점쳤다. 미국에서 법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하원과 상원을 모두 거쳐야 하는데 상원을 통과하기 매우 어려운 구조라는 얘기다. 현재 미국 상원 100석 가운데 여당인 공화당이 52석을 차지하고 있다. 공화당이 빠른 입법 처리를 위해 조정절차를 신청하더라도 여당 내 반대표가 3표만 나와도 법 통과 자체가 무산될 수 있는 상황이다.
파일 센터장은 “국경조정세는 미국에서 생산해 해외로 수출하는 제품에 대해서는 법인세를 면제해주는 대신 해외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수입되는 매출에 대해서만 세금을 매기겠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미국내 일반 소비자들에게 전가되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면서 “실제 미국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 본사가 있는 아칸소주(州) 상원의원과 최대 주택용품 유통체인인 홈디포가 있는 조지아주 상원의원 등 벌써 여러 상원의원들이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 “긴축 걱정이지만 매우 느리게 진행될 것”
물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은 고민해야 할 변수라는 지적이다. 파일 센터장은 “지난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주요 중앙은행들이 적극적인 경기부양 정책을 펴왔고 이제 다시 긴축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올해 이미 한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한 연준은 올해 두 차례 추가 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와 일본은행(BOJ) 등도 통화긴축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긴축적인 통화정책은 주식시장에 우호적인 환경이 아니다.
그는 “앞으로 전세계 거시경제 지표는 각국 중앙은행들의 정책에 달렸다”면서 “중앙은행 긴축정책에 따라 금융시장도 다소 조정 과정을 거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비관적으로 보진 않았다. 파일 센터장은 “각 중앙은행들은 축적된 위험회피 성향을 보여왔다”면서 “긴축으로의 전환은 매우 느리게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 “오바마는 원칙주의자, 트럼프는 협상가”
오바마 정부의 경제정책에 깊이 관여했던 파일 센터장에게 트럼프 정부와 오바마 정부의 의사결정 과장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단편적인 인상”이라고 전제하면서도 “둘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책을 만드는 건 일종의 팀 스포츠와 같다. 목표를 공유하고 이 정책이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몇몇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만 바라보고 결정을 하려는 것 같아 걱정”이라면서 “놓치고 있는 측면을 좀 더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협상에 대한 태도 역시 오바마와 정부와 트럼프 정부의 다른 점이라고 했다. 파일 센터장은 “오바마 정부는 늘 협상을 경계했다”고 말했다. “개별적인 협상에 집중하다 보면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 수 없다는 게 오바마 전 대통령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는 “오바마 정부는 지속 가능한 원칙과 정책을 만들려고 했다”면서 “트럼프 정부는 모든 것을 협상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