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업계의 위기가 가시화된 건 지난 7월 삼성물산 패션부문(구 제일모직)이 브랜드와 인력을 재편하면서다. 21년 된 남성복 엠비오와 지난해 7월 론칭한 잡화 라베노바 사업을 접고 SPA(제조·유통 일괄의류) 브랜드인 에잇세컨즈를 집중육성하기로 했다.
LF는 올 상반기 남성 캐주얼 일꼬르소와 여성 캐주얼 질바이질스튜어트를 백화점 매장에서 철수하고 온라인 채널로 돌렸다. 온라인 강화에 힘쓰는 한편, 백화점은 중고가 브랜드인 닥스·마에스트로·헤지스·라푸마, 가두점은 타운젠트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최근에는 SK네트웍스가 모태 사업인 패션사업 부문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오브제·오즈세컨·세컨플로어 등 자체 브랜드와 캘빈클라인·타미힐피거·DKNY·클럽모나코 등 수입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SK네트웍스는 지난해 까날리·아메리칸 이글 등 신규 브랜드를 론칭하고 스티브J&요니P도 인수하는 등 부진한 패션사업의 실적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역부족이었다.
LS네트웍스도 35년 전통의 토종 브랜드 프로스펙스만 남기고 패션사업에서 철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스케쳐스의 지분 매각을 공식화했고 이에 앞서서는 독일 브랜드 잭울프스킨과 스위스 피크퍼포먼스 등의 사업도 접은 바 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패션업계 불황이 장기화하며 대기업도 버티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반면 유통업체는 패션산업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2012년 한섬을 인수한데 이어 SK네트웍스 패션부문에 관심을 보이며 포트폴리오 확장을 노리고 있다. 인수가 성사되면 연매출 1조원대 패션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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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즈는 국내 SPA 브랜드 중 롯데쇼핑이 지분 49%를 보유한 유니클로에 이어 단일 브랜드로 매출 규모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 구축된 이마트라는 탄탄한 유통망에 힘 입은 바 크다. 데이즈의 연매출 규모는 유니클로의 절반 수준인 약 5000억원으로, 리뉴얼을 통해 유니클로에 버금가는 한국 대표 SPA 패션 브랜드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롯데마트도 최근 서구화되고 있는 한국인의 체형 등을 고려해 ’빅사이즈(Big-Size) 의류‘ 판매에 나서는 등 자체 의류 브랜드인 ’테(TE)‘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이달 1일 캐시미어 전문 브랜드 ’델라 라나(Della Lana)‘를 출시, 본격적으로 브랜드 사업에 뛰어들었다. 지난 1일 강남점을 시작으로 5일 센텀시티점, 8일 본점까지 이달에만 3개 매장을 열고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7월 드레스, 정장, 주얼리(보석·장신구류) 등을 합리적 가격에 빌려주는 패션 렌탈 전문점 ’살롱 드 샬롯(Salon de Charlotte)‘을 열기도 했다. 가격대가 높아 평상시 쉽게 구매하기 힘들었던 드레스, 정장, 주얼리 등을 여성 드레스와 남성 정장은 각 30만원대, 아동 드레스와 잡화 상품은 10만원대에 대여해준다.
패션 O2O(온·오프라인 연계) 서비스도 등장했다. SK플래닛이 지난 23일 론칭한 ‘프로젝트 앤(PROJECT ANNE)’이 그것으로, 정기적으로 이용료를 내고 국내외 유명 브랜드의 옷과 가방 등을 빌려 입는 형식이다. 의류상품의 경우 이용료는 한 달 기준 1벌씩 4회 이용 시 8만 원, 2벌씩 4회 이용 시 13만 원이다. 이용 후 마음에 드는 상품은 할인된 가격에 구매도 할 수 있다. SK플래닛은 이 서비스를 ‘패션 스트리밍’이라고 명명했다. 인터넷에서 음악이나 영상을 실시간으로 재생해 감상하듯 패션도 소유보다는 소비의 개념으로 접근하겠다는 뜻이다.
업계 관계자는 “패션업계 불황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에는 대기업도 버티기 힘든 상황에까지 봉착했다“면서 ”소비 양극화가 고착화되고 저렴하게 사서 한철 입고 버린다는 인식이 확산하며 중간 가격대의 브랜드는 더 이상 설 곳을 잃게 됐다. 유통사들은 패션업체들이 빠져나간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것으로 이러한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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