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우령 KBS 앵커는 내달 2일 열리는 ‘제13회 이데일리 W페스타’를 앞두고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허 앵커는 KBS의 7기 장애인 앵커다. 이름처럼 새하얀 안내견 ‘하얀이’와 함께한 그는 시종일관 환한 미소로 말을 건넸다. 그는 ‘나다움, 아름다움’ 주제로 열리는 올해 W페스타에서 ‘나를 이긴 사람들’ 세션 패널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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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가 찾아온 후 사람들의 못된 말은 그의 마음에 상처로 남았다. 허 앵커는 “실명 후 오른쪽 눈에 사시가 생겼는데 주변 아이들이 ‘너 눈이 왜 그렇게 생겼느냐’라는 말을 많이 해 힘들었다”며 “눈을 가리고 다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고 회상했다.
큰 시련에도 그는 자신을 미워하지 않았다. 친구들의 놀림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시각장애인이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없게 만드는 외부 환경이었다고 했다.
허 앵커는 “시각장애인은 건널목을 건널 때 신호등에 음향 신호기만 설치돼 있어도 안전하게 보행할 수 있다”며 “아직 그런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이 사회가 너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런 환경을 바꾸기 위해 사회에 작은 돌을 던지기 시작한 것은 2019년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나서부터다. 그는 구독자 16만명에 달하는 ‘우령의 유디오’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여성 시각장애인이 혼자 무인 편의점에서 생리대를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영상을 통해 소개했다. 포장지에 점자가 없어 생리대 종류를 구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키오스크를 이용한 계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허 앵커는 “우리 사회에서 성과 생리에 관한 이야기는 쉽게 꺼내기 어려운 얘기”라며 “특히 장애 여성의 성과 관련한 이야기는 더욱 깊숙한 곳에 있고 제대로 된 교육도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야 내 삶이 편해질 것으로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해당 영상이 공개된 이후 생리대 제조사들은 점자 표기를 한 생리대를 출시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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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도전을 한 그에게도 앵커의 길은 험난했다. 허 앵커는 “비장애인인 앵커 지망생들은 블로그나 카페를 통해 취업 정보를 얻고 스터디를 하지만 장애인들은 정보 접근성이 낮아 막막했다”며 “도전해 보자는 생각으로 원서를 넣었는데 다행히 합격해 이렇게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막상 앵커 합격 후에는 또 다른 걱정이 밀려왔다고 했다. 앵커인데 카메라 위치를 제대로 찾을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그는 “앵커 선배가 ‘신경 쓰지 말고 자연스럽게 하라’는 조언을 해줬는데 그 한마디가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계기”라고 전했다. 대중 앞에 서면 오히려 에너지를 얻는다는 그는 점자정보단말기로 원고를 받아 읽고 자연스럽게 뉴스를 전하는 등 전문적인 앵커 면모를 갖춰 나가고 있다.
그는 자신을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한 단어로 표현했다. 우연한 기회를 잡아 행운으로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허 앵커는 “시각장애인이 되고 움츠려 있다가 자신감을 찾았던 것, 아나운서라는 꿈을 갖게 된 것, 유튜브 방송을 하게 된 것 모두 우연한 기회였다”며 “그 기회를 흘려보낼 수도 있었지만 나만의 행운으로 만드는 삶을 지금도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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