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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QR코드를 휴대전화로 촬영해 접속하면 블로그에 접속되는데, 해당 블로그 메인화면에는 ‘이윤희 실종사건의 전말, 그리고 경찰의 증거인멸’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이젠 고령이 된 이 씨의 부친이 18년 만에 다시 꺼낸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2006년 6월 5일 이 씨는 전북대 수의학과 4학년에 재학 중 한 음식점에서 종강모임을 가졌고 다음날 오전 2시 30분쯤 집으로 귀가했다가 자취를 감췄다.
이 씨는 원래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통계학과 미술을 복수전공 했으나 장래희망이었던 수의사가 되기 위해 2003년 전북대 수의학과로 편입했다. 실종 당시 그는 졸업까지 1학기만을 남겨놓은 상태였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이 씨가 남자동기였던 김모씨(당시 27세)의 배웅을 받아 걸어 원룸에 걸어들어가는 것을 봤다는 진술이 나왔으며, 다음 날인 6일 오전 2시 59분쯤부터 1시간 정도 인터넷 검색을 한 기록이 있었다. 검색창에는 ‘112’와 ‘성추행’이라는 단어를 3분간 검색했으며 오전 4시 21분에 컴퓨터를 끈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이 씨의 동기들 증언에 따르면 학교에 이틀째 나오지 않는 것이 이상해 이 씨의 원룸을 찾았고 현관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원룸 안에서 개 짖는 소리만 나자 건너편 원룸에서 이 씨의 집을 살펴보았다고. 이들은 이 씨 집 창문이 열려 있었으며 방 한 가운데에 신발을 비롯한 잡동사니가 어지럽게 굴러다녔다고 밝혔다.
결국 이 씨의 동기들이 경찰과 119구조대를 불러 문을 부수고 집 안으로 들어갔으나 이 씨는 없었다. 알려진 바로 당시 경찰은 ‘곧 부모님이 내려오시니 걱정하지 말고 청소하고 있으라’고 했고 이는 증거인멸의 단초가 됐다는 비난이 일었다. 이 씨의 동기는 이후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경찰이 현장 보존에 관해 따로 언급하지 않았고 이 씨 부모님께서 놀랄까봐 청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사건에서는 누군가 전문적인 프로그램으로 이 씨의 컴퓨터 일부 인터넷 검색 기록과 네이트온 메신저 대화 로그를 삭제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뿐만 아니라 이 씨가 방에 두고 쓰던 찻상과 공구함에 있던 망치가 사라졌다. 그러다 그해 6월 13일 이동세 씨가 딸의 원룸을 살펴보던 중 정교하게 다리만 사라진 채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찻상을 발견했지만 어떤 증거를 얻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망치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해당 사건에는 경찰 1만 5000여 명이 투입되는 등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소득을 얻지 못했다. 그렇게 이 씨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지 어느덧 18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동세 씨는 뉴스1에 전북대 교정에 노란 스티커를 붙이게 된 경위에 대해 “이제는 더이상 딸을 기다릴 기력조차 없는 노인이 됐다”며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딸을 찾기 위한 모든 것을 하고자 하는 마음에 스티커를 붙이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나도) 이제 나이가 많아서 활발하게 움직일 수 없는 한계에 와 있다. 그래서 내가 무너지면 내 딸이 실종된 것이 다 잊혀질 거 같아서 마지막으로 사력을 다해 전국에 알리려고 한다”며 “아직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국내나 외국에서 살아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다”고 전했다.
현재 그는 당시 수사 담당 경찰관들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한 상태다. 이 씨의 사건을 방송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이 씨 컴퓨터 안 2006년 6월 4일 오후 10시 45분부터 8일 오후 3시 4분까지 약 4일간의 기록이 수사 과정에서 삭제됐다는 사실을 전했다.
그는 18년 전 담당 경찰관 들을 고소한 것에 대해 “딸 이윤희를 찾는 것이 목적”이라며 “왜 그 기록을 삭제했는지 알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