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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위기의 영농형 태양광…“25년 쓸 패널, 3년 뒤 논에서 치우랍니다”

김은경 기자I 2023.07.03 09:00:00

경남 함양 기동마을 ‘영농형 태양광 시설’ 가보니
태양광 발전 5년차, 농가 든든한 수익원 자리잡아
농지법상 최대 8년 허용…철거 시 ‘6억’ 포기해야
개정안 발의에도…사회적 관심 부족에 통과 ‘난망’

[편집자주] 농지에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고 재생에너지 보급을 활성화해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는 방안으로 영농형 태양광이 주목받고 있다. 각국의 친환경 에너지 전환 정책 속도가 빨라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영농형 태양광 사업을 확대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규제에 막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농지법 등 관련된 제도가 아직 마련되지 않은 탓이다. 영농형 태양광을 설치한 경남 함양군 기동마을을 찾아 사업에 보완이 필요한 점을 살펴보고 어떤 방식의 제도 개선 논의가 필요한지 목소리를 들어봤다.


[함양=이데일리 김은경 기자] 여름의 초입. ‘춘향이의 마을’ 남원역에서 차로 삼십여 분을 달려 도착한 경남 함양군 기동마을은 모내기를 마치고 두어 뼘 자란 벼 모종들이 뿜어내는 초록빛과 풀벌레 소리로 청명했다. 지난달 21일 마을을 찾은 건 논에 설치된 ‘영농형 태양광 발전 시설’을 보기 위해서다.

기동마을과 다른 농촌과 가장 큰 차이는 논에서 벼만 수확하는 것이 아닌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전기를 함께 생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논에는 3.5m로 성인 키를 훌쩍 넘는 기둥이 수십 개 설치됐고 기둥 위에는 한화솔루션(009830) 큐셀부문(한화큐셀)의 태양광 패널 607개가 비스듬히 깔렸다.

기둥이 높은 건 콤바인과 같은 농기계를 패널 아래로 지나다닐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패널을 격차로 채운 검은색의 태양광 셀은 평소였다면 그냥 흘려보냈을 빛을 놓치지 않고 흡수해 전기를 생산해 내고 있었다. 이곳 발전량은 하루 약 100㎾(킬로와트)로 연간 150여명이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영농형 태양광 발전은 경작을 멈추고 발전만 진행하는 농촌 태양광 발전과 달리 발전과 경작이 함께 이뤄진다. 비결은 빛을 투과해 농작물 생산도 함께 가능할 수 있도록 한 한화큐셀의 패널 기술력이다. 이 덕분에 농민들은 농가소득을 늘릴 수 있게 됐다. 패널 설치에 따른 일조량 감소로 농작물 소출은 일부 줄지만 발전 운영업체로부터 토지 임대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 면적 3068㎡(약 928평) 기준 토지 임차료는 연 500만원 수준으로 농가 소득에 큰 도움이 된다. 기동마을은 이곳에서 생산된 전력을 한국전력과 한국남동발전에 각각 전력도매가격(SMP),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방식으로 판매한다. 이를 통해 2020년 총 3051만원, 2021년 2942만원, 지난해 약 3000만원의 수익을 각각 올렸다.

지난 21일 경남 함양군 기동마을 논에 영농형 태양광 발전소 모듈이 설치된 모습.(사진=김은경 기자)
하지만 이 같은 장점에도 이날 만난 이태식 기동마을 사회적협동조합장의 얼굴은 밝지만은 않았다. 농지법 등 관련 제도가 미비해 앞으로 3년 뒤면 논에서 이 시설을 철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하나의 농지에서 작물 재배와 태양광 사업을 병행할 수 없다. 일시적인 사용 허용 기간도 최장 8년에 불과하다. 2019년 만든 이 시설은 현재 운영 5년 차에 접어들었고 3년 뒤면 마을의 든든한 수익원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

태양광 패널을 비롯한 시설 수명이 보통 25년 이상인데 3분의 1도 쓰지 못하고 철거해야 하는 셈이다. 이 조합장은 “시설을 짓는 데 1억6000만원이 투입됐는데 5년 동안 이제 겨우 설치비를 회수했을 뿐”이라며 “앞으로 20년을 더 써서 6억원의 수익을 낼 시설을 철거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2021년 3월 기준 전국 66곳에서 영농형 태양광 시설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이 조합장은 “이 시설 자체가 국가 보조사업으로 한국남동발전 출연 기금을 통해 지은 것인데 국가 공공재를 이렇게 낭비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조합은 시설 수익으로 알뜰살뜰 마을 살림을 꾸려왔다. 100여명의 마을 주민은 조합 수익으로 마을회관 운영비를 충당했고 좁아서 차가 드나들기 어려웠던 마을 초입 도로공사 비용도 해결했다. 명절에는 조기를 사서 나누고 아이들 장학금도 지급했다. 벼농사 소득만으로는 꿈꾸기 어려웠던 일이다. 이 정도 면적에서 농사를 지어 농기계와 비룟값, 인건비 등을 뺀 벼농사 수입은 연 100만원 수준으로 손해가 안 나면 다행이라고 한다.

지난 21일 경남 함양군 기동마을 논에 영농형 태양광 발전소 모듈이 설치된 모습.(영상=김은경 기자)
농지법 개정 논의가 절실한 시점이다. 앞서 2020년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영농형 태양광을 위한 타용도 일시 사용 허가 기간을 20년으로 하는 농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가장 최근인 지난 5월에는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지에 영농형 태양광 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근거인 ‘농지의 복합이용’ 개념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했다. 필요성이 높은데도 사회적인 관심 부족으로 실제 법안소위 통과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태양광 업계에서는 공청회 등을 통해 세부 법안 내용을 조율하고 각국의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발맞춰 ‘한국형 태양광 모델’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조속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사업에 대한 지역 주민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홍보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제도 개선과 함께 영농형 태양광 발전 수익을 어떻게 배분할지 사회적 논의와 개념 정립도 필요하다. 농지에 영농형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 농작물 소출량이 약 20% 감소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사실 소출량이 줄면 땅 주인이 아닌 임차농 입장에서는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현재 발의된 농지법 개정안에는 영농형 태양광으로 발생한 매전 수익을 임차농과 공유하도록 하는 등 농업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일각에서는 농민들이 태양광 발전 수익에 의존해 농사를 소홀히 하면서 수확량이 줄어들고 결국 국가 식량 정책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 조합장은 “외지인이 태양광 수익만 노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일정 규모의 땅을 소지한 농민만 이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고 반드시 농업 활동을 병행해야 한다는 내용을 법 조항에 담는 식으로 부작용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농촌 고령화가 심화해 정부의 사회복지기금만 늘고 있는 현실에서, 농민들이 태양광 수익을 올리게 된다면 국가 재정 차원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1일 경남 함양군 기동마을 논에 영농형 태양광 발전소 모듈이 설치된 모습.(사진=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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