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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는 인류 역사상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천연두를 잡아낸 ‘소의 천연두 바이러스’입니다. 소의 천연두에 감염된 사람이 천연두에 걸려 죽지 않는 현상을 통해 개발한 것입니다. 때문에 백시니아는 질병을 예방하는 ‘백신’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신라젠의 펙사벡은 이 우두 바이러스에서 티미닌 키나아제(TK) 유전자를 제거한 것입니다. TK는 세포를 복제하는 유전자인데, 이를 없앤 우두 바이러스를 사람 몸 속에 주입하면 TK 레벨이 높은 암(종양)에 달라 붙습니다.
사람 몸 속에서 정상세포에는 TK 레벨이 낮고, 암세포에서는 TK 레벨이 높습니다. 본능적으로 TK가 풍부한 암세포에 달라붙은 펙사벡 바이러스는 암세포가 갖고 있는 TK를 빼앗아 활발하게 자기 증식을 펼칩니다. 이렇게되면 암은 증식을 멈추게 됩니다. 반대로 증식한 바이러스는 암세포와 암세포가 만든 혈관을 터뜨립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펙사벡의 TK를 제거하면서 면역유도물질인 ‘GM-CSF’를 주입하는데, 이 물질은 몸 속에서 면역세포 등을 암세포로 안내해 공격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GM-CSF가 몸 속에서 분비되면 면역계의 수지상세포가 활성화되면서 면역세포인 ‘T세포’에게 암세포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또 암세포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을 폐쇄해 영양분 공급을 차단, 암세포 성장을 억제하는 기전도 갖고 있습니다.
미국 연구진이 개발한 이 기술은 미국 바이오벤처 제네렉스세라퓨틱스가 도입, 앞서 임상 2a상 등에서 작용기전을 입증했습니다. 이후 협력업체였던 신라젠이 2014년 제네렉스의 지분을 모두 사들이면서 펙사벡의 개발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6년 1월 첫 환자 등록을 시작으로 현재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임상 PHOCUS, 무용성평가 데이터 발표 앞둬
펙사벡의 글로벌 3상 임상 명칭은 ‘PHOCUS’입니다. ‘PHase 3 Pexa-Vec OnColytic VirUs Combined with Sorafenib’의 약자로, 기존 항암제 넥사바(성분명 소라페닙)를 투여하지 않은 진행성 간암 환자 600명이 대상입니다.
해당 임상에 대한 데이터의 접근 권한은 ‘외부의 독립적인 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DMC)만 갖고 있습니다. 신라젠조차 임상 3상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임상 3상이 신약으로 인정받기위한 최종 관문이기 때문에 관련 회사는 물론 외부의 불공정한 압력·편법 등을 차단해 약물의 객관적인 유효성만 근거로 판단하기 위함입니다. DMC는 미국,독일,이탈리아,스위스,중국,대만 등 6개국 출신 8명의 세계적 종양학분야 전문가로 구성했습니다.
펙사벡의 성공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PHOCUS의 임상 결과는 최대 관심사일 것입니다. PHOCUS 임상은 두 차례 중간 데이터 발표가 예정돼 있습니다. 첫번째는 ‘무용성진행평가’, 두번째는 ‘효능중간평가’입니다.
이중 무용성 평가는 사전에 정해진 사망자 수가 도달해야 공개 가능한 것으로, 개발 중인 약이 치료제로서 가치가 있는지 따져 임상 지속 여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대체로 오랜 기간 진행하는 항암제 임상시험에 도입해 평가합니다. 올해 환자등록을 완료하고 무용성평가를 진행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무용성평가 결과 공개를 앞두고 지난해 10월 펙사벡 3상을 주도하는 가산아부 알파 미국 메모리얼슬로언케터링암센터(MSKCC) 교수는 “펙사벡의 임상 3상은 전 세계적으로 순항 중이며 임상 데이터 역시 잘 축적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9일 현재 미국 임상정보 사이트 크리니컬트라이얼에 따르면 펙사벡의 PHOCUS 임상은 2020년 12월 완료할 전망입니다. 2021년에는 허가 및 상용화가 목표입니다.
◇면역관문억제제와 시너지…병용요법 활용 기대
펙사벡의 또 다른 특징은 기존 면역관문억제제와 함께 복용했을 때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면역관문억제제는 환자의 면역기능을 통해 암을 치료하는 방법의 면역항암제입니다. 2세대 표적항암제에 이은 3세대 항암제로 불리지만, 환자마다 효과를 보이는 경우가 달라 약제 대비 비용 효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그렇다고 같은 면역관문억제제를 함께 병용할 경우 기전 중복에 따른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펙사벡과 같은 항암 바이러스는 객관적 반응률(ORR)을 높일 수 있는 강력한 매개체로 병용요법에 대한 임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신라젠과 미국 리제네론이 전이성 신장암 환자 86명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리브타요’ 병용 연구(1b상), 미국 국립암연구소(NCI)와 연구자 주도로 전이성 대장암 환자 35명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임핀지’, ‘트리멜리무맙’ 병용 연구(1상)가 있습니다. 또 유럽 파트너사 트렌스진이 주도해 간암 환자 30명을 대상으로 ‘옵디보’ 병용 연구(1상), 고형암 환자 60명을 대상으로 ‘여보이’ 병용 연구(1상)을 각각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