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전상희 기자] 50년. 사람으로 치면 하늘의 명을 깨닫게 된다(지천명·知天命)는 때이지만 지난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대구은행의 모습은 달랐다. 간부들의 직원 성추행에 이어 비자금 조성, 채용비리, 대구 수성구청의 펀드투자 손실보전 의혹까지 폐쇄적 조직 안에서 곪아버린 각종 문제들이 터져 나왔다. 하늘의 명이 아닌 제왕적 경영진의 명을 하늘같이 따른 결과다.
박인규 전 회장의 불명예 퇴진 이후 새롭게 체제정비에 나선 대구은행과 금융지주는 회장·행장을 분리했다. 지주 창립 이후 첫 ‘투탑(two top) 체제’다. 이에 더해 처음으로 외부 출신 회장을 선임하며 조직 쇄신의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지주 회장 내정자인 김태오 전 하나HSBC생명 사장과 은행장 내정자인 김경룡 DGB금융 부사장도 조직 안정화와 신뢰 회복을 입 모아 약속했다. 이 같은 변화의 움직임에도 우려의 눈초리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조직 쇄신을 위한 이번 인선에서조차 경북고 출신 김태오 내정자와 대구상고·영남대 출신 김경룡 내정자가 조직 내 고질적 학연·지연 논란을 이어가면서 각종 불법 행위와 비리를 양산했던 ‘그들만의 리그’를 재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 전 회장이 단행한 지난해 임원 인사에서 승진한 김경룡 내정자가 전 경영진과의 고리를 끊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구은행 전·현직 임직원들이 연루된 특혜채용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새어나온다.
DGB금융은 올해 1분기 두자릿수 실적 개선(지난해 동기 대비)을 기록한 지방금융지주들 사이에서 1% 순익 증가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당장의 설욕을 위해 ‘어닝 서프라이즈(시장의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는 깜짝 실적)’에 욕심을 내기보다 ‘최고 경영자(CEO) 리스크’ 해소로 놀랄 일 없는 DGB금융의 토대를 만들어야 할 때다. 일례로 한 지방금융지주는 지역 관계자들로부터 밀려드는 인사 청탁을 사전 차단하려는 방편으로 지방대학이 추천한 인재를 채용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미해당 대상자의 채용기회 박탈이라는 결점을 고려하더라도 ‘CEO도 어쩌지 못할’ 제도적 장치를 시도한 점은 되새겨볼 만하다. 지속 가능한 권력이 아닌 지속 가능한 조직을 만들라는 고객과 지역민의 명을 따르는 것, 새로운 두 수장에게 첫 번째로 걸어보는 기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