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불꼬불 면발에 얽힌 얼큰한 사회학 ‘라면’

경향닷컴 기자I 2008.07.07 09:30:00

ㆍ우주식품까지 진화 ‘50년 국민간식’ 맛보기

[경향닷컴 제공] ‘1960년대 후반,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요즘처럼 라면이 흔하지 않아 내 또래의 아이들에게 라면은 이름만 들어도 군침이 도는 아주 특별한 음식 중의 하나였다. 그 무렵 라면 한 개 값은 이십 원이었다. 우리는 곧잘 이런 사실을 노래처럼 중얼거리고 다녔다. “1_일반 시민 여러분 2_이것이 무엇입니까 3_삼양라면입니다 4_사용해보시죠 5_오골오골한 라면에 6_육류 수프를 넣고 7_칠칠하게 끓이지 마시고 8_팔팔하게 끓여서 9_구수하게 잡수시고 10_십원짜리 동전 두개만 내십시오.” 누가 지었는지도 모르는 이런 사설이 구전 민요처럼 아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떠돌았다. 라면에 대한 아이들의 애착과 동경이 가히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안도현 산문집 ‘사람’ 중 ‘라면예찬’)

고춧가루와 계란, 떡을 재료로 하고 매운 국물맛이 특징인 틈새라면의 ‘빨계떡’. |경향신문 자료사진

50년 가까이 온국민의 으뜸 간식 자리를 지켜온 라면. 그런데 요즘 라면시장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촛불 바람을 타고 소비자들의 구매-불매운동이 엇갈리면서 시장의 판도마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삼양식품의 컵라면에서 금속성 너트가 발견됐다는 보도가 한 보수언론을 통해 흘러나오자, 누리꾼들은 “삼양이 소비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보수언론에 광고를 주지 않은 것에 대한 보복이냐”며 삼양 살리기에서 나섰다.
 
반면 업계 1위 농심은 울상이다. 비슷한 시기 바퀴벌레가 나왔다는 논란이 일었지만 농심 측이 특정 언론에 광고를 실었다는 이유로 네티즌들이 농심 불매 운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촛불 정국에서 엉뚱하게 주목받는 라면. 그 꼬불꼬불한 면발만큼이나 얽히고 설킨 얘깃거리도 많다.

농심 대 삼양, 숙명의 라이벌

광고 카피로도 알려졌듯 우리나라 인스턴트 라면의 원조는 삼양라면이다. 한국전쟁 이후 끼니 때우기조차 힘들었던 시절, 우리나라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이 탄생했다. 1963년 9월15일 삼양식품이 정부로부터 자금을 지원 받아 일본의 명성식품으로부터 라면 기계 2대를 도입한 것이다. 당시 라면 한 봉지 값은 10원, 지금도 익숙한 주황색 포장지에 무게는 100g이었다.

출시 초기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식재료를 사다 직접 조리하던 식습관에 익숙했던 소비자들은 인스턴트 제품에 마음을 열지 않았다. 특히 라면의 ‘면’이 먹을 것이 아니라 비단(羅)이나 솜(綿)이라고 생각해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3년여간 회사 직원들이 직접 끓이는 시범을 보이는 등 여러가지 시식행사를 통해 생소함이 줄어들자 라면은 불티나게 팔리게 된다.
 
팍팍하고 배고팠던 시절, 식사대용으로 인기를 끌게 된 라면은 시장이 급성장해 60년대 후반 연간 매출액이 1500억~1600억원대에 이르게 된다. 72년에는 국내 최초의 용기면인 삼양컵라면도 만들어졌다.

롯데공업에서 롯데라면을 생산한 것은 65년. 이후 롯데공업은 75년 당시 최고인기 코미디언이었던 ‘막둥이’ 구봉서씨와 ‘후라이보이’ 곽규석씨를 등장시킨 광고 ‘형님 먼저 드시오, 아우 먼저 들게나’라는 카피로 유명한 농심라면을 내놓는다. 농심라면의 성공을 계기로 사명을 아예 농심으로 교체하기에 이른다. 농심은 72년부터 면을 팜유로 튀겨냈다는 점을 부각시켜 눈길을 끌었다.

본격적인 라이벌 경쟁은 8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된다. 9년 전 삼양이 출시해 재미를 보지 못했던 용기면을 81년 농심이 사발면이란 이름으로 출시하게 되는데 ‘3분이면 조리 끝’이라는 간편성을 무기로 히트를 치게 된다.
 
이후 농심은 너구리(82년), 안성탕면(83년), 짜파게티(84년) 등을 줄줄이 출시했고, 86년엔 국내 라면 업계의 최대 히트작인 신라면을 내놓는다. 농심의 시장점유율은 점점 상승해 막상막하의 경쟁이 벌어지게 된다.

농심의 거센 도전에 맞서 꾸준히 신제품을 개발해 오던 삼양식품이 결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은 89년 이른바 ‘우지 파동’ 때문이었다. 우지 파동은 삼양식품이 라면에 비식용 쇠기름을 썼다는 내용의 사건으로 이로 인해 삼양식품 책임자가 구속되기도 했다.
 
삼양식품은 이 사건과 관련, 8년간의 법정 투쟁 끝에 97년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점유율이 10%대로 떨어지고 라면의 판매가 중단됐으며 외환위기까지 겹쳐 회사가 화의에 들어가는 등 큰 타격을 입었다.

이 즈음 농심은 확고한 1위를 굳힌다. 농심 측은 이에 대해 “우지 파동으로 인해 농심이 업계 1위로 올라섰다고 하는데 이미 85년 시장 점유율 42%를 넘어서면서 업계 정상에 올라섰다”고 반박한다. 당시 잡지 주부생활에도 ‘22년 만에 선두자리 뒤바뀌게 된 라면 업계의 시장쟁탈전’이라는 제목의 ‘생활정보 특별취재’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이처럼 80년대 라면 업계의 경쟁은 어느때보다 치열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라면 종류가 50~60종류였고 광고경쟁도 뜨거웠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라면 시장은 업체 조사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농심이 70%가량을 점유하며 1위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삼양라면(13~14%), 한국 야쿠르트, 오뚜기 등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 직장인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라면에 대해 궁금한 것들

세계라면협회( International Ramen Manufacturers Association)라는 국제 조직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이 기구는 일본 닛신식품, 농심 등 세계 21개국 60개 라면업체들이 모인 협회로 지난 4월엔 라면의 발상지 오사카에서 세계라면총회를 열기도 했다.
 
올해는 특히 58년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 닛신식품 창업자가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치킨라면을 개발한 지 50년이 된 해다.
 
세계라면협회에 따르면 올해 인스턴트 라면은 전 세계에서 1000억개 이상 팔릴 전망이라고 한다. 지난해 세계의 라면 소비량은 979억개로 2006년보다 60억개 정도 늘었다.
 
총수로 보면 인구가 많은 중국이 가장 많이 팔렸고 인도네시아, 일본, 미국, 한국의 순이었지만 1인당 소비량으로 따지면 우리나라는 국민 1인당 75개 정도를 소비해 1위에 올랐다.

라면 가격은 50년 동안 얼마나 올랐을까. 63년 10원이었던 라면값은 현재 650~700원선. 70배 정도 뛰었다. 당시 10원이었던 버스비가 지금 1000원, 자장면값이 30원에서 4000원으로 뛴 것에 비하면 많이 오른 축은 아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라면값이 조금만 올라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과거의 라면 사재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도 라면값이 오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할인점에서는 라면을 박스째 사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2월 특히 밀가루와 라면값 상승을 예로 들어 “서민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준다”며 “라면값이 100원 올랐다면 서민들에게 큰 타격”이라고 언급해 라면값을 직접 챙기기까지 했다.

꼬불꼬불한 면발에도 이유가 있다. 우선 작은 라면봉지에 긴 면발을 집어 넣을 때는 곡선으로 담는 것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보통 라면 1봉지엔 49m의 면발이 들어가는데 한 가닥에 65㎝인 면발이 75가닥 정도 담긴다고 한다. 또다른 이유는 ‘시간 절약’이다.
 
라면을 삶을 경우 면발 표면의 공간을 따라 안으로 물기가 들어가게 되는데, 꼬불꼬불한 라면의 틈 사이로 물이 스며들어가면서 면발을 골고루 익게 하고 조리시간도 단축할 수 있다. 이밖에도 일직선의 면발보다 꼬불꼬불한 면발이 유통과정에서 덜 부숴지고, 면을 기름에 튀겨내는 제조 과정에서 있어서도 직선보다는 곡선이 빨리 튀겨진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라면이 노란색인 이유는 뭘까. 밀가루의 플라보노이드 색소와 첨가제인 비타민 B2 때문이라고 한다. 우동이나 국수의 경우 밀가루와 물, 염분만 첨가되지만 라면에는 탄산칼리의 포화수용액으로 강한 알칼리성을 띠는 간수를 넣는데 이것이 열을 가하면 노랗게 변한다.

라면 포장지에 찍힌 ‘라춘쇠’라는 문구도 한때 대표적인 궁금증 중 하나였다. 2005년 삼양라면의 표지에 찍힌 ‘라춘쇠’라는 문구가 도대체 무엇이냐를 두고 네티즌 사이에 설왕설래가 있었고 전북 익산시의 라면 공장에 근무하는 생산자 이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진화하는 라면

냉라면, 비빔면, 메밀면, 설렁탕면, 쌀라면…. 인스턴트 라면의 종류만해도 150여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레시피에 따라 라면은 상큼한 샐러드로도, 시원한 아이스크림으로도, 진한 해장국으로도 변신이 가능하다. 변신의 귀재 라면을 이제 자판기에서도 뽑아 먹을 수 있다. 컵라면이 아니라 봉지라면 얘기다. 자판기 라면의 원리는 간단하다. 열전도가 잘되는 용기에 면과 수프가 들어있다. 호스에서 물이 나오면 250~300도의 고온에서 재빨리 끓이면 라면 한 그릇이 뚝딱 완성된다. 끓인 물을 부어 면을 익히는 컵라면과는 달리 열을 가해 1분40초 만에 끓여주기 때문에 엄마가 끓여주는 맛 그대로라는 것이 자판기 라면의 장점이다.

라면은 지난 2월 우주 식품으로도 인정받았다. 한국원자력연구원 등의 연구로 인정받아 우주인들이 먹게 된 라면은 일반적인 라면과는 다르다. 수증기가 생기면 전자 기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물을 끓일 수 없는 우주선 내에서도 낮은 온도에서 잘 익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주선 안에서 공급될 수 있는 물의 최대 온도는 70~75도 정도. 미지근한 물에서도 면이 잘 익도록 개발 업체는 라면의 단면에 무수히 많은 구멍을 냈고 수프와 면이 혼합형태로 담겨있다. 식사 도중 국물이 우주선 안으로 흩날리지 않도록 국물 흡수와 압력 평형 기능을 갖춘 전통 발효식품 포장용기도 인증서를 받았다고 한다.

기존 라면에 도전장을 던져 성공한 틈새라면도 빼놓을 수 없는 라면계의 이단아다. 틈새라면의 역사는 김복현 사장이 83년 서울 명동의 건물과 건물 사이 틈새에서 라면가게를 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세 때부터 분식집을 시작한 김 사장은 해장라면으로 국물에 고춧가루를 푼 매콤하고 시원한 맛을 무기로 한 라면 전문점을 열었다.
 
이후 틈새라면의 메인 메뉴로 등극한 이 라면은 ‘빨계떡’이라고 불리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동네 분식집이 오직 라면 한 종목에 의지해 120여개 가맹점을 거느린 프랜차이즈 기업으로 뜬 것이다. 로열티와 재료공급만으로 매출액은 20억원 가까이에 이르렀고 한 편의점에 PB(Private Brand)라면으로 공급돼 지난 1월엔 라면의 대명사인 신라면을 앞지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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