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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y Edaily 교통사고 열에 셋이 나이롱 환자…치료비 3.7배 더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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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배 기자I 2025.12.08 05:31:00

[전문가와 함께 쓰는 스페셜 리포트]②
경상환자 30% 과잉 진료 의혹…한방 치료 수두룩
영국은 '정액 배상'·의학적 근거 없는 합의 금지

[김은경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데일리 김국배 기자] 서울에 사는 A씨는 퇴근길에 막히는 도로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가 실수로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서 앞차를 살짝 들이받았다. 흔히 말하는 ‘키스 사고’로 범퍼끼리 부딪힌 정도였다. 그런데 사고가 나자마자 앞차 운전자 B와 조수석에 있던 C가 동시에 목을 감싸 쥐고 내렸다. 둘은 곧장 한방병원에 입원해 2주간 ‘세트 치료’를 받고 각자 병원비 300만원씩을 청구했다. 심지어 나중엔 갑자기 “트렁크에 있던 200만원짜리 고급 스피커가 고장났다”며 대물 피해를 추가 접수하려 있다. A씨가 경찰에 진정서를 넣겠다고 하자 그제야 ‘착각했다’며 슬그머니 청구를 취소했다.

(이미지=구글 제미나이)
이처럼 경미한 사고가 ‘통증 호소→진단서→장기 치료→보험 청구’로 이어지는 관행은 경제적 관점에서 결코 가볍지 않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자동차보험 경상환자 진료비 중 약 30%가 과잉 진료로 의심된다. 과잉진료 의심 그룹의 1인당 진료비는 그렇지 않은 그룹의 3.7배, 진료 일수는 3.1배에 달한다. 진료 패턴을 보면, 비급여 비중이 높은 한방진료 이용률, 입원율, 장기 통원 비율이 유독 높은 집단이 과잉 진료를 주도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자동차보험에서 한방 경상환자 1인당 치료비가 현대의학의 3배 이상, 총 치료비는 약 4배에 이른다는 지적이 국정감사에서 나오기도 했다.

이 모든 비용은 결국 선량한 가입자의 보험료 인상으로 돌아간다. ‘사고 한 번 났으니 보험으로 오래 치료 받자’는 인식, 한방병원과 브로커의 과도한 유인, 통증의 경중을 가려내기 어려운 구조가 맞물리면서 작은 접촉사고가 보험 제도의 신뢰를 잠식하는 입구가 돼 버린 것이다.

영국은 법정 정액 배상으로 통제

해외는 다르다. 영국은 경미한 목 상해(whiplash)에 대해 법적으로 정액 배상을 정하고, 의학적 증거가 없는 합의도 금지했다. 손해 배상액은 3년 단위로 재검토한다. 과도한 소액 청구를 줄여 자동차 보험료를 낮추겠다는 목적에서다. 책임 없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어느 정도의 엄격함은 불가피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물론 우려의 시각도 있다. “경미 사고라서 인적 손해가 없다고 추정한다”는 원칙이 자칫 실제로 고통을 겪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지우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그러나 무분별한 청구가 제어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정작 중대한 부상을 입은 피해자조차 ‘또 하나의 과장된 청구’로 의심받게 되는 역설이 벌어질 수 있다. 경미 사고 구간에서 인과관계를 엄격하게 다룰수록 오히려 큰 피해를 본 사람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보상이 더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한다.

보다 중립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경미 사고 인과관계 부존재 추정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증명 구조의 재설계’에 가깝다. 지금은 경미 사고가 나면 보험사가 일일이 진짜 상해인지 확인해야 한다. 당연히 조사와 분쟁이 늘고 그 비용은 돌고 돌아 보혐료를 높인다. 반대로 일정 기준 이하의 사고는 사람을 크게 다치게 할 가능성이 적다는 전제를 두면 다르다. 예외적인 경우엔 구체적 의학 자료로 뒷받침하도록 하면 제도 전체는 더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균형점이 만들어진다.

법·수가 체계 동시 개편 필요

필요한 처방은 분명하다. 경미 손상 수리 기준을 토대로 경미 사고의 범위를 법률 또는 하위법령에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동시에 한방을 포함한 진료 체계의 수가·심사 구조를 재정비해 과잉 진료 유인을 줄여야 한다. 또 경상 환자의 진료 패턴과 보험금 지급 데이터를 통합 분석해 이상 징후를 조기에 포착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정도 수준의 차량 손상에서는 의학·공학적으로 통상적인 인체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설명하고, ‘억지로 목부터 잡고 병원부터 가는 문화는 결국 내 이웃과 나 자신의 보험료를 올리는 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야 한다. 그렇게 해야 우리 스스로도 그 행태를 부끄럽게 여기고 고쳐 나갈 수 있다.

자동차 경미 사고는 단순한 소액 사고가 아니다. 작은 충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의 보상 문화와 도덕적 해이, 보험 제도의 공정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극히 경미한 물적 손해에 대해서는 인적 손해와의 인과관계를 원칙적으로 부정하되, 진짜 피해자에게는 예외를 넉넉히 열어 두는 정교한 기준을 세울 때, 자동차보험이 다시 ‘공정하게 위험을 나누는 장치’라는 본래의 역할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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