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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현지시간)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 위원은 전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를 계기로 보렐 대표와 만나 “EU는 기존 토대 위에서 양측 관계를 더 전진시켜야 하며 이를 흔들거나 후퇴시키는 언행을 해선 안 된다”며 EU가 디리스킹을 미국의 디커플링처럼 활용해선 안된다고 일침을 놨다.
왕 위원은 또 EU가 미국의 대중 견제 정책을 함께 맞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중국과 EU는 함께 자유무역 체제를 수호하고,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하는 (미국의) 일방적인 괴롭힘에 저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왕 위원 발언에 보렐 대표는 “글로벌 생산·공급망에서 EU와 중국을 분리하는 건 비현실적”이라며 “디리스킹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며 EU는 중국 발전을 방해할 의도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EU는 중국과 강력한 연대를 유지하고 건설적·안정적·장기적으로 관계를 발전시키길 원한다”고도 덧붙였다.
최근 독일 등 EU 주요 회원국들은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디리스킹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이달 중국이 반도체·태양광 패널 등에 쓰이는 핵심 원자재인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한 수출 규제를 발표하면서 중국에 대한 경계감이 더욱 커졌다.
중국과 공급망을 완전히 분리하는 디커플링과 비교하면 공급망 재편 수준의 디리스킹은 대중 견제 수위가 상대적으로 온건하지만, 중국은 EU의 행보에 경계감을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미·중 관계가 여전히 냉랭한 상황에서 유럽마저 디리스킹을 명분으로 대중 견제에 동참할 경우 외교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EU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독일이 지난 13일 디리스킹를 지향한다는 내용의 첫 대중 국가안보전략을 발표한 것이 역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리창 중국 총리가 지난 3월 취임 후 첫 순방지로 독일과 프랑스를 택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당시 리 총리는 디리스킹을 명목으로 특정 국가를 배제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중국은 이달 중순 예정됐던 보렐 대표의 방중 일정을 일방적으로 취소해 EU 외교정책에 보복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최근 친강 중국 외교부장이 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국 측 사정으로 취소됐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