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업그레이드에 대한 기대가 이미 반영돼 실제 이벤트 이후에는 추가로 가격이 상승할 소재가 없던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충격파가 투자 심리를 크게 위축시킨 것도 영향을 줬다고 보고 있다.
거시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이더리움도 당분간 고전을 면치 못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업그레이드 후 에너지소비량이 줄고 총 발행량이 감소하는 등 기관·기업이 투자자들이 관심을 둘 만한 특성이 생겼다는 점에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굵직한 기관·기업 투자자들이 이더리움을 사들인다면, 분위기를 반전시킬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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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더리움, 업그레이드 성공에도 이틀 만에 12% 이상 급락
17일 암호화폐 시황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날(오후 2시 30분 기준) 이더리움은 24시간 전 대비 2.7% 하락한 1435달러를 기록했다. 업그레이드가 이뤄진 지난 15일 오후 4시께 시세와 비교하면 12% 넘게 떨어졌다.
이더리움은 업그레이드를 통해 ‘체질 개선’에 성공했지만, 투자자들은 업그레이드 직후 매도를 택한 것이다. 이더리움은 블록체인 작동방식을 변경하는 일명 ‘머지(The merge) 업그레이드’를 진행했다. 블록체인 네트워크 운영하기 위해 강력한 컴퓨터 연산 능력을 보유한 채굴자들에게 보상을 지급하는 작업증명(PoW) 방식에서, 더 많은 코인을 보유한 검증자들에게 보상을 주는 지분증명(PoS)으로 바꿨다. 이로써 이더리움은 블록체인상 거래가 에너지난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럼에도 이더리움 가격이 하락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크게 3가지 요인을 꼽았다.
먼저, 호재의 선반영이다. 최근 몇 개월간 머지 업그레이드에 대한 기대감이 최고조에 이르렀고 가격도 충분히 상승했다. 실제 업그레이드가 일어날 시점에는 가격 상승을 이끌 추가 소재가 없었다. 여기에 투자자들이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팔라’는 투자 격언대로 움직이면서, 실제 업그레이드 이후에는 가격이 하락했다는 분석이다.
암호화폐 분석 업체 글래스노드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거래자들은 9월까지 이더리움 가격에 배팅하기 위해 콜옵션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데이터를 보면 ‘뉴스에 팔아라 이벤트’가 일어날 것이란 기대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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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는 미국의 8월 CPI 충격이 투자심리를 크게 위축시킨 것도 요인으로 보인다. 미국 노동부는 13일(현지시간) 8월 CPI가 전년 대비 8.3%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다우존스의 전망치 8.0%를 웃도는 수치로,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심각한 상황임을 보여준다고 해석됐다.
빗썸경제연구소 이미선 센터장은 이더리움 폭락 배경에 대해 “업그레이드에 대한 기대감이 이미 6월부터 반영된데다가, 최근 발표된 미국의 CPI가 시장 분위기를 급격하게 바꾼 결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센터장은 “8월 CPI 발표를 자세히 보면 서비스 물가 상승률은 전달보다 더 확대됐다”며 “인플레이션이 굉장히 길게 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이어 “연방준비제도가 단순히 9월 기준금리를 0.75%포인트나 1%포인트 올리는 것을 걱정할 때가 아니라, 올해 말까지 기준 금리를 당초 목표한 4%를 넘어 그 이상으로 올릴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셋째로는 기존 이더리움 작동 방식을 유지하려는 세력이 ETHPoW라는 블록체인을 만든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ETHPoW는 블록체인 작동방식을 기존의 PoW로 유지하려는 채굴자들이 주도해 만들어졌다. 기존 이더리움의 히스토리를 그대로 복사(하드포크)해 만든 블록체인으로, 이더리움에서 가지고 있던 코인도 같은 수량만큼 ETHPoW에서 생겨난다. 이더리움 투자자들은 새롭게 생긴 ETHW코인을 1대 1 비율로 무상 수령할 수 있다.
이 EHTPW 코인을 무상으로 받으려고 업그레이드 직전에 이더리움을 사뒀던 사람들이 업그레이드 완료 후 이더리움을 팔고 떠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빗 리서치센터의 정석문 센터장은 “ETHW을 기다리면서 최근 단기간에 이더리움으로 들어왔던 물량들이 있었고, 이더리움 업그레이드 후 상당 부분 매도에 나서면서 가격 하락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더리움, 업그레이드 힘입어 날아오를 수 있을까?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을 고려하면, 이더리움 시세도 긍정적으로 전망하긴 어려워 보인다. 이더리움이 업그레이드 후 발행량이 감소하는 ‘디플레이셔너리 토큰’이 됐다는 점도 호재로 작용하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더리움은 작동방식 변경 후 신규 코인 발행량이 연간 약 490만개에서 약 58만4000개로 크게 줄었다. 지난해 네트워크 사용 수수료(가스비)를 소각하는 업그레이드가 적용된 것을 고려하면, 연간 신규 발행량이 거의 없거나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렇게 되면 이더리움의 희소성이 커져 장기적으로 가치는 더 높아질 수 있다.
이런 기대에 대해 이미선 센터장은 “디플레이셔너리 토큰이 됐다는 점은 원래 알려져 있던 내용으로 새로운 재료가 아니다”며 “실제 총 발행량이 마이너스가 돼도 시장 분위기를 바꿀 힘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지금으로서는 중요 기업과 기관에서 실제 이더리움 투자에 뛰어드는 사례가 나오는 것이 최선의 시나리오라는 게 전문가들 시각이다. 이더리움이 에너지 소모량을 99% 줄여 ‘환경파괴 리스크’를 털고, 디플레이셔너리 토큰으로 바뀌면 기업과 기관 투자자들의 관심은 더 커질 수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도 최근 보고서에서 “머지 업그레이드로 이더리움에 대한 기업·기관의 관심이 커질 수 있다”며 “투자자산으로 이더리움 구매를 고려하는 기관이 늘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 센터장도 “기관투자자들의 참여 소식이 나온다면 앞으로 이더리움 가격 흐름이 바뀔 수 있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OK코인의 제이슨 로우 최고운영책임자(COO)는 “기관투자가들은 여전히 이더리움을 적극 매수하지 않고 관망하다고 있다”며 “이더리움이 금융당국으로부터 증권과 다른 자산으로 인정 받아야만, 기관들은 자사의 컴플라이언스 규정이나 규제 적합성등을 판단해 투자를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