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馬? 다 내력이 있단 말이야!

조선일보 기자I 2010.04.05 10:37:00

국내최고 경주마 ''디디미'' 자손 75%가 우승 경력
뿌리는 ''다알리 아라비안''… 1700년 시리아 태생

[조선일보 제공] 말(馬)에도 '명가(名家)'가 있다. 경주마의 질주 본능은 순발력·근력·폐활량 등 육체적인 능력과 승부 근성·사람과의 친화력 등 정신적인 부분이 합쳐져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질주 본능의 30% 이상은 유전적으로 전달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다. 아무리 후천적 훈련으로 능력을 개발한다 해도, 아무 말이나 뛰어난 경주마가 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인공수정은 IFHA(국제경마연맹) 규정상 금지돼 있다. 좋은 경주말은 혈통과 경주력을 철저하게 따져 선별된 수말과 암말의 자연교배를 통해서만 태어나게 된다. 따라서 경주마의 가계도(家系圖)는 엄격하게 기록·관리되며, 이를 따라가다 보면 수백 년에 걸쳐 내려오는 '명가'의 조상을 찾을 수 있다.

▲ 1700년에 태어나 전 세계 명마 95%의 시조가 된 다알리 아라비안의 모습. 18세기 영국 화가인 존 우튼이 그렸다. /한국마사회 제공

■ 한국의 명가 '디디미'가(家)

한국 경마의 최고 명가는 '디디미'라는 말에서 출발한다. 1990년 5월 미국에서 태어나 1994년까지 각종 미국 경마대회에서 14전 4승의 성적을 거뒀던 디디미는 1998년 한국마사회(KRA)에 의해 약 3억9000만원에 씨수말(경기에서 은퇴하고 자손 번식을 하는 말)로 수입됐다.

그 후 디디미의 자손 288마리가 국내 4861경기에 출전해, 그 중 218마리가 629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12.9%에 이르는 높은 승률로, 디디미 자마(子馬)들이 벌어들인 우승 상금만 약 217억원에 이른다. 한국마사회는 "시장이 작은 한국의 실정상 디디미의 교배료는 무료지만, 씨수말 교배료 시장이 형성돼 있는 미국에서 이 정도 자손을 거느리고 있다면 한 번 교배에 2만달러(약 2억2500만원) 정도는 받을 수 있다"고 했다.

▲ 1998년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디디미는 한국 경마의 최고 명가를 일궜다. /한국마사회 제공

디디미가(家)의 뒤를 잇는 집안은 2000년부터 씨수말로 활동한 '컨셉트윈'가(총 우승상금 약 204억원)와 2009년 경마계를 떠난 '피어슬리'의 자손들(약 186억원)이 이루고 있다.

■ 명마의 95%는 다알리 아라비안 자손

KRA 말 혈통전문가인 이진우씨는 "한국의 경주마 3대 명가로 꼽히는 이 말들의 가계도를 따라 올라가면 결국 같은 조상에서 만나게 된다"고 말했다. 바로 '다알리 아라비안(Darley Arabian)'이라는 말이다. 세계의 명마로 꼽히는 말들의 95%가 이 말의 후손이다. 1700년 시리아에서 태어나 1704년 토머스 다알리라는 사람에 의해 영국으로 수입된 씨수말이다. 지난 2005년 9월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의 유전학자 커닝햄이 전 세계 약 50만 마리 명마의 유전자를 추적·분석한 결과 이 사실을 알아냈다.

▲ 디디미의 후손인‘절호찬스’는 최근 이름을 날리고 있는 경주마 중 하나다. 절호찬스는 2007년 데뷔 이후 올해 3월까지 약 5억600만원의 상금(14전 6승)을 따냈다. /한국마사회 제공

커닝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1760년대 중후반 영국 1급 경마대회에서 19전19승이라는 놀라운 전적으로 '전설의 명마' 대접을 받는 '이클립스(Eclipse)'도 다알리 아라비안의 고손자 격이 된다. "세계 경마는 이클립스 이전과 이후"라는 말도 들었던 이클립스는 1771년 은퇴 이후 씨수말로 활동하며 344마리의 우승마를 배출해 집안의 명성을 떨쳤다.

두바이의 통치자이자 세계 경마계의 가장 '큰손'인 셰이크 모하메드는 세계 경마계의 대부(代父)가 아랍계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자신의 말 목장 이름을 다알리 목장으로 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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