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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데레츠키가 바로 이 곡을 한국에서 직접 지휘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 다음날인 30일, 폴란드 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한국 초연한다. 지난 27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지금 한국인들이 느끼는 고통을 알고 있다”면서 “특히 유가족들의 비통함이 얼마나 크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부족해 더이상의 코멘트를 하지 못하는 걸 양해해달라”고 했다.
1933년 폴란드의 남부 도시 뎅비카에서 태어난 펜데레츠키는, 이미 20세기 중반에 세계적 작곡가로 명성을 얻었고, ‘체제에 저항’하거나 ‘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음악가로 남다른 평가를 받아왔다. 그는 이에 대해 “폴란드의 비극적 역사가 나를 그렇게 키웠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목격했으며, 외삼촌 한 명은 나치에, 또 한 명은 소비에트에 의해 목숨을 잃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그는 당시의 기억과 상처를 ‘아우슈비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분노의 날’(1967)이나 ‘폴란드 진혼곡’(1980) 같은 음악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젊은’ 펜데레츠키는 아방가르드였다. 의미의 전달보다는 형식 파괴와 새로운 어법을 찾는 일에 몰두한 실험주의자였다. 특히 50년대와 60년대 초반의 그는 자신의 음악 속에서 갖가지 ‘음향 도발’을 감행했다. 이를 테면 현악기를 맨손으로 문지르고 두드렸으며, 웃음과 울음, 휘파람 소리를 음악 속에 섞었다. 악기와 인간의 목소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벗어나려고 했던 것일까? 당시 그가 썼던 음악속에서는 타자기 소리, 뱃고동 소리, 플라스틱 깨지는 소리를 비롯해 끌로 유리를 긁어대는 거북한 음향까지 들려온다. 그러다가 펜데레츠키는 70년대에 접어들면서 방향을 선회했다. 이후 그가 걸어간 길은, 약간 단순화시켜 표현하자면, 독일 풍의 신낭만주의였다. 오늘날 우리가 즐겨 듣는 그의 음악은 주로 이 계통의 작품이다.
이제 노인이 된 그에게 “젊은날의 음악은 어떤 의도를 갖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그것도 하나의 저항이었다”고 말했다. 그렇다. 폴란드의 음악학자인 토마제프스키도 그런 평가를 내린 적이 있다. 그는 펜데레츠키의 아방가르드에 대해 “(유일한 정답으로 주어졌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당시의 ‘거대한 거짓말’에 대한 반발. 어린 시절의 충동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압제로부터 예술가를 해방시키려 했던 열망”이라고 평했다.
그렇다면 외견상 180도쯤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이는 지금의 음악은 무엇인가? 펜데레츠키는 그것을 “뒤로 돌아서서 문을 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문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다들 알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며 “이제 내 음악적 영감은 ‘전통’이라고 불리는 바로 그 문에서 나온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한국 초연하는 ‘덧없음의 노래’도 그렇다. 이 곡에서도 역시 말년의 펜데레츠키가 재발견한 ‘전통적 서정’이 힘을 발한다. 음반으로는 안토니 비트가 지휘한 바르샤바 필하모닉의 연주가 낙소스 레이블로 출시돼 있다. 가격도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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