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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먹고 사나" 불안을 먹는 식탁

조선일보 기자I 2008.05.07 09:12:26

"쇠고기·닭고기 왠지 찝찝해요"
쇠고기·닭고기 매출 뚝… 돼지고기 매출 30% 증가
소비자들 불매운동 움직임에 외식업계 ''전전긍긍''
전문가들 "자극적인 정보 아닌 정확한 정보 알려야"

[조선일보 제공] 주부들이 자주 이용하는 교육전문 인터넷 사이트 '푸르미닷컴'(www.p urmi.com). 최근 들어 이 사이트의 게시판에는 자녀 교육에 대한 이야기보다 광우병·GMO(유전자변형작물) 식품 등 먹을거리에 대한 고민을 담은 글이 더 많다. GMO옥수수 수입업체 명단과 대표적인 판매제품을 올려 불매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까지 올라왔다. 이에 대해 많은 주부들은 "좋은 정보 감사하다"면서도 "이런 제품 빼면 뭘 사야 하나", "뭐 먹고 살아야 하느냐"고 고민을 털어놓고 있다.

◆불안한 밥상, 바뀌는 소비 행태

쇠고기 광우병 논란에서부터 닭고기 관련 조류인플루엔자(AI) 확대, GMO 옥수수 논란, 식품 이물질 파동 등 식품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소비자 불안은 계속 고조되고, 소비행태까지 바뀌고 있다.

유치원에 다니는 6살짜리 아들을 둔 주부 여지현(34) 씨는 "유치원에서 급식을 하는데, 어떤 재료를 쓰는지 불안해 도시락을 싸서 보낼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 당산동에 사는 송현실(여·53) 씨는 "기존엔 값이 싼 호주산 쇠고기를 주로 사 먹었지만, 최근에는 '비싸더라도 한우'라는 원칙을 세웠다"면서, "비싼 등심 대신 불고기나 국거리 위주로 사고, 쇠고기 먹는 횟수를 줄였다"고 말했다.

1주일에 2~3번은 패스트푸드점을 찾았던 조아영(24)씨도 "비위생적으로 사육되는 소들을 비추는 화면이 방송에 자주 나와 친구들 사이에서 '쇠고기는 더럽다'는 이미지가 강해지는 것 같다"면서, "요즘엔 패스트푸드점에도 발길을 끊었다"고 말했다.


◆불통 튄 업계, 전전긍긍

소비행태의 변화는 업계 매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마트의 경우, 지난달 21일부터 27일까지 쇠고기 매출이 그 전주(前週)보다 7% 줄었다. AI의 영향을 받고 있는 닭고기는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무려 50%나 줄었다. 반면 돼지고기는 전주 대비 20%, 전년 대비 30% 매출이 늘어나는 등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이마트 홍종식 축산팀장은 "광우병과 AI논란과 관련해 사람들이 쇠고기와 닭고기에 대해 전반적으로 거부감을 갖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통업체들은 광우병 파동과 관련, 불매운동 조짐까지 보이자 파문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되자 처음으로 판매를 시작해, 농민들로부터 오물 투척을 받는 등 고초를 겪었던 롯데마트는 미국산 쇠고기 판매여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미국산 쇠고기 판매와 관련해 "다들 누가 총대를 멜 것인지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밖에서 먹는 음식도 사정은 비슷하다. 롯데리아, 맥도날드, 버거킹 등 패스트푸드 업체들은 한결같이 "호주산과 뉴질랜드산을 써 왔고, 앞으로도 바꿀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4월 초부터 AI 사태로 인해 피해를 입어온 닭고기 관련 업체들은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BBQ관계자는 "AI는 호흡기성 질병으로 먹는 음식으로는 감염이 불가능하다"며 "처음엔 역효과가 날까 조용히 있었지만, 최근엔 홈페이지 등을 통해 안전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의 선택은?


정부는 6일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따른 인간광우병 위험은 매우 낮다고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일부 불안요인이 있긴 하지만, 최근 광우병이나 AI에 대한 걱정은 지나친 감이 있다"며 "소비자들이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먼저 정확한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 식의약안전팀 하정철 박사는 "식품에 들어간 재료 표시를 더욱 엄격하게 해야 한다"면서, "학교 급식이나 직장급식에서도 어떤 고기가 들어 갔는지 알고 선택해서 먹을 수 있도록 제도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무조건 피하는 것 역시 현명한 소비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여정성 교수는 "정부가 '무조건 괜찮다'는 식의 안일한 대처를 할 게 아니라 소비자들이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며, "소비자들은 충분한 정보를 통해 선택하되, 지나친 불안감으로 피하기만 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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