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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스마트폰 끊은 아이들 "축구할 땐 숏츠 생각 안 나요"

이지은 기자I 2025.04.15 06:00:00

■대한민국 다음 세대 ''GenZ''는 행복할까
무주 드림마을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해소 캠프
휴대폰 제출 반발 있지만…2~3일이면 새 재미 찾아
男 체육활동 인기 최고…인터넷 습관 스스로 진단도
"과거보다 사회적 단절 심화…가정·학교서 교육해야"

[무주(전북)=이데일리 이지은 기자] 울산에서 고3 수험생 생활 중인 김모군은 하루 평균 6시간 정도 스마트폰을 쓴다. 잠을 자거나 수업을 듣는 시간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이지만 김군은 “나 정도면 친구들보다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라고 했다. 휴대폰으로는 주로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틱톡에서 ‘숏폼’(1~2분 안팎의 짧은 영상)을 본다. 조금만 보고 자려고 했으나 알고리즘을 타다 보니 시간이 훅 흘렀던 적도 종종 있었다. 김군은 “인터넷을 하다 보니 바보가 된듯한데 이젠 미래를 생각해야 할 것 같아 걱정된다”고 했다.
10일 김태준 드림마을 상담사가 진행하는 집단상담에 참여한 남학생들.(사진=이지은 기자)
지난 10일 전북 무주군 안성면의 국립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에는 김군과 같은 고민을 하는 13~18세 청소년이 모여 ‘e-세상 꿈 지킴이 캠프’ 4일 차 일정을 치르고 있었다. 여성가족부가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에 위탁운영 중인 드림마을은 청소년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해소를 위한 국내 유일 ‘상설’ 전문기관이다. 덕유산 근처 폐교 건물을 활용해 만들었는데 주변에는 논밭뿐이고 무주 시내까지는 차로도 20분이 걸린다.

이곳에 도착한 아이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스마트폰 제출’이다. 스스로 의지보다는 교사나 부모의 권유로 캠프를 찾는 경우가 많은 만큼, 이 단계에서부터 저항하는 아이들도 상당수다. 그러나 보통 이틀에서 사흘 정도면 아이들의 아우성은 잦아들곤 한다. 휴대폰과 멀어졌기에 느끼는 새로운 재미를 찾게 되기 때문이다. 이날 만난 아이들도 “처음엔 휴대폰이 없으면 힘들 것 같았는데, 여기서 지내다 보니 별로 생각 안 난다”고 입을 모았다.

드림마을은 △집단상담 △개인상담 △체육활동(미션올림픽·탁구·배드민턴·농구·축구·피구·플로어하키) △대안활동(윷놀이·보드게임·나노블럭·영화감상) 등으로 학생들의 오프라인 생활을 구성한다. 특히 이번처럼 남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캠프에서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체육활동이다. 혈기왕성한 나이 탓에 매일 다툼이 생기지만, 동시에 아이들이 가장 재미있어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는 게 취미였다는 이모군은 “형, 동생들이 싸우긴 했지만 그래도 같이 몸 부딪히면서 축구하는 게 제일 좋았다”고 돌이켰다. 갈등을 겪으며 소통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이군은 “친구들과 인터넷으로 이야기하다 보면 앞뒤가 맥락이 안 맞고 자기 하고 싶은 얘기만 하는데 이곳에 오니 사람과 얘기를 할 때 눈을 보고 공감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10일 드림마을 캠프에 참여한 한 학생이 작성한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 (사진=이지은 기자).
이날 김태준 드림마을 상담사가 진행하는 집단상담에 참여한 남학생 7명은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은 정보·편리함·친구·돈 등을 얻었다고 했지만,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을 말할 때 목소리가 훨씬 커졌다. 너도나도 손을 들며 내놓은 답변들을 모아보면 돈·시력·뇌세포·조절력·학교생활·교우관계·부모님의 신뢰 등 각양각색이었다. 특히 잠을 못 자서 키를 잃었다는 말에는 순간 정적과 함께 아이들의 한숨이 뒤따랐다.

이어 김 상담사는 “인터넷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와 빠져나올 방법에 대해 자신의 방식대로 직접 써보자”며 각자에게 종이 한 장을 나눠주고 5분의 시간을 줬다. 아이들은 ‘친구들이 다 하니까 나만 안 하면 찐따(타인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을 뜻하는 비속어)같다-친구들과 하는 시간을 정하기’ ‘재밌고 중독적이라서-현실에서 취미 활동하기’ ‘편리하고 쉬워서-흥미로운 것에 도전하기’ 등을 펜으로 한 자 한 자 적어내려 갔다.

5박6일 기간의 캠프를 마친 아이들은 이제 일상으로 돌아간다. 아이들은 각자의 꿈을 위해 스마트폰을 이용할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했다. 김군은 “밥 조금 더 먹고 운동 조금 더 하고 학교에 조금 더 많이 남아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줄이겠다”고 했다. 이군은 “50분 알람을 맞추고 10분은 쉬는 식으로 계획을 갖고 스마트폰을 필요한 시간만 쓰겠다”고 했다.
10일 전북 무주군 안성면의 국립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 전경. (사진=이지은 기자)
전문가들은 캠프 이후에도 아이들이 이같은 결심을 이어갈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상담사는 “아이가 캠프에 있는 동안 핸드폰을 없애버려도 되느냐는 부모의 문의를 받곤 하는데, 관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정말 위험하고 일방적인 행동”이라며 “아이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서로가 대화를 통해 규칙을 만들어 실천해가는 가정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심용출 드림마을 부장은 “과거 게임중독의 경우 그래도 PC방에서 친구들과 같이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숏품은 대부분 집에서 혼자 보다 보니 사회와 단절되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며 “스마트폰을 써야 할 때와 쓰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해 ‘선용’(善用)할 수 있도록 학교가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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